2002년 8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캐나다 밴쿠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등과 2010년 동계올림픽 공식 후보도시로 선정된 평창은 성공적인 유치 활동으로 경쟁 도시들과의 격차를 좁혀 나갔다. 허허벌판에서 IOC 조사평가단의 현지실사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평창은 2003년 7월 체코 프라하 IOC 총회 1차투표에서 유효 투표수 111표 가운데 51표를 얻어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1차 투표에서 과반수 확보 실패했고, 이어 실시된 2차 결선투표에서 밴쿠버에 53대 56으로 아쉽게 무릎을 꿇었다.
평창은 쉽게 좌절하지 않았다. 2010년 대회 유치과정에서 얻은 국제적 인지도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 재도전에 나섰다. 2014년 동계올림픽은 잘츠부르크, 러시아 소치 등 3개 공식 후보도시가 유치 경쟁을 펼쳤다. 승리의 여신은 또 한 번 평창을 외면했다. 평창은 2007년 7월 과테말라의 과테말라시티에서 열린 IOC 총회 1차 투표에서 유효 투표수 97표 중 가장 많은 36표를 얻고도 2차 결선투표에서 소치에 47대 51, 4표 차이로 역전을 당해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내줬다.
평창은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고 다시 일어났다. 전 국민적인 지지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약속을 등에 업고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맸다. 평창은 앞선 2차례 유치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을 살려 ‘발전된 평창’, ‘준비된 평창’을 IOC 조사평가단에 보여주며 큰 호응을 얻어냈다.
특히 8년 전 평창 일대 감자밭은 스키점프대·바이애슬론·크로스컨트리 경기장 시설로 탈바꿈했고, 평창의 변화에 IOC 조사평가단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 두 차례나 유치에 실패에도 동계스포츠 낙후지역 청소년을 초청해 스키 등 설상 종목을 가르치는 ‘드림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최, 국제사회의 신뢰를 쌓았다.
그러나 평창의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IOC 수석부위원장이자 차기 IOC위원장이 유력한 토마스 바흐를 앞세운 독일 뮌헨이 만만치 않은 상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창은 온갖 어려움을 뚫고 ‘삼수’ 끝에 동계올림픽 유치권을 확보했다.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눈부신 성장을 이룩한 ‘개발도상국 한국’의 발전상을 보여줬다. 이번 2018년 동계올림픽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세 번의 도전 끝에 가슴속에 맺힌 한을 풀어낸 평창이 다시 출발점에 섰다.
더반=정세영 스포츠월드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