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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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내 성범죄 심각… 매주 1건꼴 발생

軍인권센터, 국방부 자료 공개


#. 2009년 강원도 양구군 군훈련장 숙영지에서 김모 일병은 후임 신모 일병을 텐트로 호출했다. 선임의 부름에 급하게 달려갔지만 분위기가 이상했다. 김 일병은 신 일병에게 키스를 하라고 명령한 뒤 옷을 벗기며 구강성교 등 강제 성추행을 시도했다. 신 일병이 이를 거부하자 텐트에 감금한 뒤 간부에게 알리면 보복하겠다고 협박했다.

#. 2009년 모부대 대대장 박모 중령은 소속부대 행정반에서 부하직원인 강모씨(계급 미상)의 성기를 만지는 것을 시작으로 오랜 성추행 행각을 시작했다. 박 중령은 성추행 대상을 강씨 외 3명으로 확대하고 이들을 부대 안팎을 가리지 않고 불러내 키스와 성추행을 일삼았다. 이듬해 3월까지 박 중령이 이들에게 저지른 성추행은 60여 차례에 달했다.

위 사진은 해당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군의 병영 내 성폭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군인권센터는 24일 2009년 1월부터 2010년 6월까지 군 사법당국에 접수된 군인 성범죄 건수는 336건이었다고 공개했다. 이 가운데 군인 간 성범죄는 71건(약 21%)이었고, 나머지는 민간인을 상대로 저질러졌다. 산술적으로 군인 성범죄는 한 달에 18건, 군대 내 성범죄는 일주일에 한 건씩 발생한 셈이다.

자료는 군인 성범죄가 계급을 막론하고 다양한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진다고 전하고 있다. 가해자를 계급별로 보면 병사 213건(64%), 부사관 51건(15%), 장교 28건(8%) 등이다. 성범죄 장소는 생활관과 복도, 체육관 등 공개된 장소는 물론 훈련장 숙영지까지 포함됐다. 이러한 군 성범죄는 상급자나 선임이 하급 또는 후임에게 가하는 ‘계급구조’가 특징이다. 하지만 간부가 하급자의 부인까지 성추행한 사례도 있다.

2009년 10월 홍모 원사는 술자리에 합석한 부하 중사의 부인에게 “며느리로 생각하겠다”며 가슴을 만지는 등 추행을 저질렀다. 군인들의 성범죄는 이처럼 광범위한데 처벌은 솜방망이였다. 전체 336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73건(52%)이 불기소처분을 받은 데서 알 수 있다. 정식 재판에 부쳐진 사례는 128건(38%)이며, 18건(5%)은 약식기소에 그쳤다.

임태훈 군인권센터소장은 이와 관련, “군사법 체계가 독립적이지 않아 비롯된 결과”라며 “군사법원의 성범죄 재판이나 수사가 사단장 등 지휘관의 외압에 휘둘리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실제 군대 내 성범죄가 통계에 잡힌 것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임 소장은 “공개된 군인 성범죄 현황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사안의 특성상 합의가 종용되거나 주변의 암묵적 압력으로 소가 취하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성폭력 상담센터 등 민간인 수준의 성범죄 피해자 보호 장치가 군에도 하루속히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석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