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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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 거부자 대체복무제 빨리 도입돼야”

‘여호와의 증인’ 한국지부 정운영 이사

지난달 7일은 양심적 병역 거부와 수혈 거부로 익히 알려진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에게는 가슴 벅찬 날이었다. 한국과 같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교도소에 보내는 몇 안 되는 나라인 아르메니아 정부와의 송사에서 여호와의 증인이 승리했기 때문이다.

유럽인권재판소 판결 요지는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을 투옥시킨 아르메니아 정부의 조치가 종교·양심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유럽 인권 협약에 위배된다는 것. 이로 인해 아르메니아에서 투옥된 여호와의 증인 69명은 석방을 기다리고 있다. 이 판결은 멀리 아르메니아에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초 한국 국회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 허용 법안’이 발의됐다. 유럽인권재판소 판결은 한국에도 작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1950년 이후 병역을 거부해 투옥된 이들이 1만6225명을 넘어선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이달 28일까지 전국 17개 지역에서 ‘하느님의 왕국이 오게 하옵소서’를 주제로 대중 집회를 벌이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서울대회에 참석한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 정운영(57) 이사를 만났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 한국지부를 운영하는 6인 위원 중 한 사람이다.

―왜 병역을 거부하나.

“말씀 때문이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서기 1세기 기록을 보면 로마에서 기독교인들이 박해받은 주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황제 초상화에 절하는 것을 거부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로마군 복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병역을 거부하나.

“아니다. 군대는 전쟁을 가정한 조직이다. 전쟁을 염두에 놓고 미리 준비하는 그런 병역은 거부한다. 예를 들어 강도가 침입해 가족을 죽이려 할 때의 정당방위는 인정한다. 하지만 실제로 정당방위권을 행사해 상대방에 위해를 가한 일은 없다. 나치 독일 당시 양심적 병역 거부로 1만명이 투옥됐고 이 가운데 2000명 이상이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그런 반성의 영향인지 2차대전 후 독일은 양심적 병역 거부권을 헌법에 보장했다. 결코 다투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기독교인의 자세다.”

―병역을 거부한 전과자인가.

“그렇다. 1975년 강제로 입영당했다. 막상 군에 끌려갔더니 (우리들을 보고) ‘왜 군 질서를 혼란시키느냐’, ‘밖에서 근무하지’ 하면서 환영하지 않더라. 육군교도소에서 3년을 복역했다. 교도소 바깥에서 농장을 경작하는 일을 했다.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는지 교도소 밖 농장을 경작하는 일은 모두 여호와의 증인들의 몫이었다.”

지난 5일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여호와의 증인 서울대회에서 찬송을 하는 신자들과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 정운영 이사(오른쪽).
―병역을 거부해 전과자가 되는 신자는.

“매년 500∼600명이 입대 연령층에 있다. 지난 5월 31일 기준으로 804명이 투옥된 상태다. 문제는 출소해도 이들이 전과자로 낙인찍혀 공무원 채용이나 취업 등에서 불이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수혈을 거부하나.

“그렇다. ‘피를 멀리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때문이다. 어떠한 때에도 수혈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해가 있다. 우리는 수혈 대용으로 무수혈 치료를 선호한다. 현재 무수혈로 겪는 문제는 없다고 본다. 병원교섭위원회가 있어 무수혈로 수술해 줄 수 있는지를 병원에 의뢰한다. 종합병원에 이미 무수혈센터도 많이 생겼고, 현재 심장수술도 무수혈로 하는 현실이다. 최근 수혈 거부로 아이가 죽었다는 보도는 명백한 오보임이 밝혀지지 않았는가.”

―올바른 교회의 모습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1세기 초기 기독교의 모습에서 찾는다. 정치적으로는 철저히 중립을 지켰다. 또 교(성)직자와 평신도 구분이 없다. 오늘날 목사나 신부처럼 교인들의 헌금으로 먹고사는 계급은 없어져야 한다. 우리한테는 교직자가 없다. 모두가 자기 직업이 있다. 모두가 자원봉사한다.”

―일상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중요한 것을 든다면.

“모든 결혼은 신성하다고 본다. 다만 혼전 성관계를 하거나 간음하면 제명 처분한다. 동성애도 인정하지 않는다. 흡연은 금하지만 술은 금하지 않는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하루빨리 대체복무제가 도입돼야 한다.”

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