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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구태 여전한 국정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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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도 민생·정책국감 실종… '제도 무용론' 목소리 높아
18대 국회 국정감사가 정보위, 운영위, 여성가족위를 제외하고 지난 7일 종료됐다. ‘폭탄주 국감’, ‘정치국감’ 행태는 많이 사라졌지만 구태는 여전했다. 민생국감, 정책국감을 향한 길은 요원한가.
 
18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지난 7일 대부분 마무리됐다. 이날 국회 국감장에 나온 피감기관 직원들이 분주히 답변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혀를 차게 하는 현장

농림해양수산위 국정감사가 열린 지난 4일 국회 5층 복도는 농어촌공사 직원들로 북적거렸다. 감사장 안에는 고위간부 40여명이 빼곡히 증인석에 앉아 있었고, 바깥에는 직원 100여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사장과 간부들이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하루종일 시달리는데 직원들이 이 정도라도 나와야 체면이 서지 않겠느냐”며 “총직원 6000명에서 100명 정도가 국회에 나온 것을 두고 많이 나왔다고 할 수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공무원들의 국회 복도 뻗치기는 외교통상위, 문화관광체육방송통신위 등 정부 모든 부처가 마찬가지다.

통신기술의 발달로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방송되는 국감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대다. 답변자료도 즉시 보내고 받아볼 수 있다. 그런데도 세 과시하듯 ‘조폭조직’처럼 대거 국회로 출근하는 관행은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 국회 출근은 13년 전 한때 시정된 적이 있었다. 폐해를 잘 아는 김종필 국무총리가 공무원의 집단적 국회출근을 엄금하면서 많이 개선됐다. 그러나 이후 종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앞으로 정부부처가 세종시로 옮기면 공무원의 국회 집단출근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야당의 한 의원은 외통위에서 “자료를 요구했는데 왜 제출하지 않느냐”며 “나를 무시하느냐”고 따졌다. 다른 의원은 “110쪽이나 되는 자료를 회의 하루 전 밤에 이메일로 주면 질의하지 마라는 얘기 아니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피감기관들은 ‘영양가’ 있는 자료를 안 주려고 의원들과 신경전을 벌인다. 반면 턱없이 많은 자료를 일단 신청해놓고 보는 의원들 행태도 문제다. 한국교총은 “교사들이 국감자료를 준비하는 잡무에 과도하게 시달리고 있다”며 ‘고압적이고 무분별한 자료 제출 요구를 자제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국회가 자료 제출에 불성실한 기관에 대해서는 관련 법률을 엄격하게 적용하되 의원들이 ‘차떼기’ 자료를 요구하는 구악 사례는 근절해야 한다.

몇몇 의원은 고압적 태도로 구설에 올랐다.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은 김성환 외교장관을 향해 “그게 상식에 맞는 얘기야? 무슨 궤변이야”라고 반말로 몰아붙였다. 민주당 최종원 의원은 “존대말을 쓰자”라는 위원장 말에 증인석에 있던 가수 유열이 박수를 치자, “누가 박수를 쳤어”라고 호통을 쳐 눈총을 샀다.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은 교과위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북한으로 가라”고 말해 교과위는 4년째 파행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일부 의원의 맹탕 질의는 실소를 자아냈다. 외통위의 한 의원은 “달러 가치가 올라 외국에 주재하는 직원들이 생활고에 시달린다. 임금을 보전해줘야 한다”는 민원성 질문을 태연하게 했다. 이 의원은 국감기간 동안 해외국감을 한다면서 상당한 경비를 들여 남미지역을 ‘시찰’하고 왔다. 외통위뿐아니라 정무위도 해외국감을 다녀왔다. 국감의 존재이유는 정부의 예산낭비 감시다. 국감을 한다면서 되레 예산을 낭비하는 행태에 “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해외국감 결과에 대해서도 녹화자료 공개 등 방법은 많지만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의원들의 재탕·삼탕 질의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내용을 파악하지 못해 자료만 뒤적이다 질의시간을 다 쓰는 의원도 있었다. 동료 의원들이 했던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는 행태도 여전하다. 피감기관장의 안하무인적 태도 역시 도마에 올랐다. 박선규 문화부 2차관은 항의성 답변을 장황하게 늘어놓다 한나라당 의원들로부터 “공손하게 예의를 갖춰 달라”는 질책을 당했다. 일부 의원은 기업인을 대거 증인으로 신청했다가 막판에 빼주는 ‘국감장사’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상시국감 체제로 바뀌어야

매년 한 번씩 광범위한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국정감사를 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최민수 국회운영위 수석전문위원은 “국감은 다른 나라에 없는 제도이고, 국감무용론까지 나오는 마당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가 어마어마하다”며 “정부가 국감에서 지적을 피하기 위해 예산 사용을 투명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효과”라고 말했다. 최 수석전문위원은 “문제점을 보완하고 상시국감 체제로 수정해 운영할 필요가 크다”고 지적했다.

국회운영위가 파악한 국감 문제점은 ▲사전 준비기간 부족 ▲ 감사대상 기관 과다(지난해는 516곳, 올해는 563곳) ▲법적인 사후 통제수단 미비로 인한 감사결과 사후처리 미흡을 들고 있다. 개선 방안으로 ▲정기국회 시기를 피해 임시회 기간으로 한정하고 ▲상임위별로 실시하며 ▲내실 있는 국감을 위해 대상 기관을 격년제 등으로 분류해 피감기관 수를 대폭 축소할 것 등을 들고 있다. 올 초 박희태 국회의장이 나서 이 같은 개선 방안의 법제화를 여야에 제안했다. 그러나 국정감사 내실화 방안은 현재 여야 원내대표의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다. 여야는 지난 5월30일 “소위를 구성해 논의한 뒤 6월에 처리해 19대 국회부터 적용한다”고 합의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백영철 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