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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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동네 산책] 아프리카의 명암

‘아프리카 방랑’의 저자 폴 서루는 모험을 즐기는 여행작가답게 위험을 무릅쓰고 아프리카 ‘육로’ 종단을 고집했다.

가축용 트럭과 고물 기차에 시달리고 직접 통나무배 노를 저으면서 남쪽으로 향한다. 트럭을 얻어 타고 케냐 북부의 사막을 가로지르다가 열악한 도로 사정 때문에 타이어가 찢어져 간신히 다른 트럭으로 갈아탔다. 도중 매복해 있던 무장 강도가 총격을 퍼붓는다. 서루가 혼비백산해 있는 사이, 마침 함께 타고 있던 군인이 침착하게 대응사격을 하고 운전사는 가속페달을 꾹 밟아 간신히 피했다.

안강휘 작가정신 편집자
그런데 군인이 태연하게 껄껄 웃으며 하는 말이 놀랍다. “저들은 당신 목숨이 아니라 당신 신발을 원하는 겁니다.” 그렇다. 생계형 범죄자인 그들 입장에서는 목숨 따위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하지만 신발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서루는 그 한마디에서 아프리카에 만연한 ‘절망’을 인식한다.

흥미진진한 여행기를 기대하며 원고를 읽던 나는 곳곳에 도사린 저자의 날카로운 관찰력에 여러 번 허를 찔렸다. 말라위에선 “방문객은 예리한 칼을 갖고 다닌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그만큼 외부인의 평가가 날카롭고 매섭다는 뜻이란다.

그 말대로 서루는 여행기라는 형식 속에 문학과 역사에 대한 이해를 녹여내면서 정치현실에 대한 비판도 숨기지 않는다. 관료들은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하고, 돈이 움직이는 곳을 따라 매춘부들이 모여든다. 외국의 천문학적인 원조금은 독재정권의 배만 불리고, 국민들은 무지한 상태로 방치된다. 서루는 구호사업도 이익을 위한 사업이며, 외국인에 의해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결국 외국에 수익만 안겨줄 뿐이라는 사실, 우리가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럼에도 서루가 묘사하는 아프리카는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다. 아프리카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노을이 지는 곳이고, 아이들이 맨발로 뛰노는 곳, 인류의 발상지이자 문화와 전통이 숨 쉬는 곳이다. 이 책은 이렇게 끝맺는다. “평범한 아프리카 사람들은 여전히 친절했다. 가장 선한 사람들은 여전히 알몸이었다.”

안강휘 작가정신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