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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연국 논설위원 |
지중해 연안의 네 나라는 남유럽 ‘돼지들(PIGS)’로 불린다. 네 나라 이름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말이다. 이들이 수모를 겪는 이유는 명확하다. 온 나라가 복지 중증에 빠진 탓이다. 무리한 복지 지출로 재정적자가 쌓이면서 국가부채가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로 커진 것이다. 그리스도 정치권이 남발한 선심성 복지가 화근이었다. 현 총리의 아버지인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는 1981년 정권을 잡자 공공부문의 몸집을 불리고 복지 혜택을 마구잡이로 늘렸다. 병세는 갈수록 나빠졌다. 결국 1인당 실질 국민소득 세계 1위를 자랑하던 부국은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아버지 세대의 잘못된 정책이 아들 세대의 고통과 수모로 이어진 셈이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인어의 노래는 한국 정치권이 애창하는 최고 인기곡이다. 어제 끝난 서울시장 보선에서도 여야 후보들이 열창한 노래는 단연 복지정책이었다. 친환경 무상급식 전면 확대, 국공립 어린이집 100곳 신설, 보육도우미 도입 같은 현란한 정책이 선거판에서 춤을 췄다. 노랫소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유력 후보 둘이 내놓은 공약이 이 정도라면 정치권이 총출동하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선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나라 곳간이 거덜 나든 말든 갖은 술수로 민심을 호릴 게 뻔하다.
국가의 복지는 결코 공짜일 수가 없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공짜 점심은 없다”고 단언한다. 공짜는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내가 쓴 신용카드는 결제일에 꼬박꼬박 청구서로 돌아온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남발한 복지 지출의 고지서는 조만간 집집으로 날아들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금액이 불어나 다음 세대가 큰 곤욕을 치를 게 불 보듯 자명하다. 아버지 세대의 무리한 복지로 나락에 빠진 그리스가 그런 형국이다.
공짜 점심은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다. 우리가 누린 복지 비용을 아들 세대에 떠넘기는 행위는 명백한 ‘도덕적 해이’다. 복지 지출에 따른 재정적자는 후세대에 마이너스 통장을 물려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가 놀라는 한강의 기적은 앞선 세대의 땀과 노력으로 일궈진 것이다. 그 성취의 결과물은 마음껏 향유하면서 후대에 빚까지 물려주겠다는 것은 정말 염치없는 짓이다.
재정적자의 위험은 로마의 말로가 생생히 보여준다. 로마의 번영은 재정 팽창을 억제해 낮은 세제를 유지한 정책이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말기에 들어 재정지출이 늘고 세금이 많아지면서 농촌은 피폐하고 게르만 침략자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세계를 호령하던 천년제국도 균형재정 붕괴와 더불어 쇠망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우리라고 안심할 수 있겠는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부채는 이미 위험수위에 이른 지 오래다. 파산 직전에 놓인 곳도 여럿이다. 정치권의 달콤한 노랫가락에 마냥 취해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밀랍으로 두 귀를 단단히 막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배연국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