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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훈의 연극家 사람들] 감상적 악한의 고백, ‘사랑이 온다’ 배우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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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만 매혹적인 연극의 주인공 김수현 인터뷰
“고통스럽지만 계속 연극 무대로 돌아오는 이유-긴장과 행복때문”

인터뷰 중인 배우 김수현
세풀베다의 ‘감상적 킬러의 고백’이라는 책을 보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실업자로 전락하는 전문 킬러가 등장한다. 연극 ‘사랑이 온다’에는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학대를 정산하러 온 악한 동수가 있다. 냉혈한 킬러와 ‘감상적’이란 문구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악한’이란 글자 앞을 수식하는 ‘감상적’이란 형용사 역시 부적절 해 보인다. 하지만 배우 김수현을 만나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연극 ‘사랑이 온다’는 폭력이 어떻게 되물림 되는지, 또 그 폭력이 어떻게 한 인간을 죽이고 또 다른 짐승을 만들어 내는지 날것으로 보여준다. 2010년 초연시 ‘동수’ 안에 있는 ‘짐승새끼’를 강렬한 아우라로 발산한 배우 김수현이 다시 돌아왔다. 오는 11월 1일부터 13일까지 국립극단내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되는 ‘사랑이 온다’가 바로 그것. 

“초연 때 보다 더 부담감이 크다. ‘동수’라는 아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왜 (아비)를 실제로 죽이지 않고 말로만 할까? 이렇게 시간을 끄는 거 보니 애초부터 죽일 생각이 없었던거야 등 여러 생각이 떠올라 캐릭터 분석에 더 골몰하게 됐다”

마치 새로운 연극을 시작하듯 작품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는 김수현은 “그때는 잘 모르고 했던 부분이 많았구나. 말(대사)에 치인 감이 많구나. 장면 장면의 디테일한 정서를 쪼개지 못했구나.”라는 고민이 더 깊어졌다고 전했다. 그 결과 9월과 10월은 오로지 ‘동수’의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연극 '사랑이 온다' 중 아비 역 배우 박경근과 동수 역 배우 김수현
■ 절대 하고 싶지 않았던 ‘배우’라는 직업

어릴 때부터 배우 꿈을 꿨다는 배우들이 많지만, 반대로 김수현은 절대 배우라는 직업만은 하지 말아야지 라는 막연한 다짐을 가졌다. 잘 알려시다시피 김수현의 부모님(김인태 백수련)은 배우이시다.

“동네를 지나가도 누구 누구의 아들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런 말 하나 하나가 불편했다.” 실제로 학창시절 김수현은 특별히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오락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미술(그림)이나 음악(노래)도 잘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뚜렷한 존재감이 없는 유령같은 아이였다. 중 고교시절을 생각하면 그저 암흑만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엔 특활반 배치시 제 때 손을 들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웅변반’에 들어간 일화도 있다. 작은 의사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가 수 많은 사람을 강한 어조로 설득해야 하는 ‘웅변반’에 걸려들었으니 고초가 얼마나 심했을까? “첫 특활시간에 잠깐 들어간 뒤 1년 내내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학교 안 재래식 건물 안에 숨어있었다”

남 앞에 자신이 노출되는 걸 극도로 싫어해 고교 시절엔 숙제를 해 왔음에도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매를 맞기에 이른다. 아이들 앞에서 주목을 받은 채 발표하는 게 너무도 싫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다. 인생을 살면서 뚜렷히 뭘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연기에 대한 갈망이 강하지 않았음에도 현재 그는 연극 및 영화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심리전문가라면, 아마 (배우 부모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에)필연적으로 벌어질 일이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배우가 되지 말아야지 하는 반작용이 역으로 올라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 누군가 김수현을 조정하다.

김수현의 인생에 갑작스런 외침은 2번 찾아온다. 첫 번째는 “대학 재수 시절 갑자기 ‘연극 영화과’를 가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은 중앙대학교가 연극과와 영화과가 분리 돼 있었는데, 김수현의 재학시절만 해도 통합 돼 있었다. “배우보다는 애니매이션 혹은 영화 감독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감독을 하려면 연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들리는 거였다. 그러던 중 얼떨결에 학교 졸업작품에 배우로 참여하게 됐다.”

결정적 쾌감은 졸업작품 무대에서 찾아왔다.“마지막 커튼콜 때 막 관객들이 박수를 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이 기분은 뭐지? 다시 한번 (연기)해봐야지”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다. 그 후 연극 ‘거울보기’로 대학로 무대에 1994년 데뷔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회수로 17년차 배우 김수현의 이력을 살펴보니, ‘2008 히서연극상 기대되는 연극인상’, ‘2008 동아연극상 신인연기상’ 2008 대한민국연극대상 유인촌 신인상‘이 적혀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늦게 빛을 본 배우로도 생각할 수도 있지만,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연극 무대에서 그를 볼 수 없었다.

“98년도에 내 스스로에게 실망해서 연극 무대에 한동안 서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로버트 처럼 주어진 대사만 처리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이따위로 할 거면 하지 말자.”

그렇다고 배우 김수현을 전혀 볼 수 없었던 건 아니다. 영화 올드보이, 아라한 장풍 대작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등에서 조연 혹은 단역으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졸업 후 영화쪽에서 일하는 동기나 선배들이 연락이 와 절반은 의리로 틈틈이 연극무대를 쉬는 동안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

연극 '사랑이 온다' 무대 앞에서 배우 김수현

■ 연극 인생 2막 5년차 배우 김수현, 진짜 ‘연기’하고 싶어졌다.

김수현에게 두 번째 외침이 찾아온 건 2005년 영화 ‘주먹이 운다’ 촬영이 끝난 뒤다. “내 촬영 분량을 다 끝내고 탈진할 것 같은 기분이 찾아왔다. ‘연기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사실, 김수현은 영화 배우로 살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고 한다. “배우를 때려치겠다고 연극 무대를 떠나왔는데, 영화배우를 계속 하고 있내. 이렇게 (배우의 길)을 못 버릴거면 연극무대로 다시 돌아가야 할 팔자인가 보다” 마음 속에서 들려오는 외침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한다.

2007년, 김수현의 연극 인생 2막이 펼쳐진다. 그의 표현대로 ‘연극 배우 요이 땅’은 이성열 연출이 산울림 소극장 무대에 올린 ‘더블린 캐롤’ 작품 부터이다. 여기서도 소소한 고민은 있었다. “그때까지 제대로 시작도 못해본 연극배우 인생이었다. 그렇다고 초짜 배우라고 하기도 뭐하고, 경력 배우라고 하기도 뭐한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예전에 느꼈던 ‘자괴감’을 다시는 갖지 않기 위해 대본을 열심히 읽는다. 아직은 연극이 그냥 너무 재미있다.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계속 연극 무대로 돌아온다. 힘든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는 나쁜 기억은 다 사라진다. 참 괜찮았는데. 행복했는데... 라는 생각만이 남는다”

극단 전망 대표 심재찬 연출은 이런 김수현에 대해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을 하는 성실함”과 “뚝배기 같은 진국의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연극 인생 2막 5년차 배우 김수현은 여전히 무대에 서기 전이 가장 떨린다고 한다. “막 추운 것도 같은 사르르 떨리는 긴장되는 느낌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 느낌을)친구처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감상적 배우 김수현의 최대 고민은 뭘까? “어떻게 저렇게 발성을 잘 할 수 있지?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동료 배우들 혹은 선배들을 볼 때마다 매번 놀란다. 후배 연기자들도 대단한 것 같다. 각 배우들마다 특화된 연기가 있는데, 도대체 무슨 경험을 겪었을까? 라는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난 경험이 부족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책에서 겪는 간접경험보다 보다 직접적인 경험을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대기업 사모님 운전사를 뽑는 공고’를 봤다. 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 알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하고 싶었는데, 최소 6개월에서 1년이라는 공지가 붙어서 하지 못했다. 연극일정이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에 꼭 하고 싶다”

■ 어느 감상적 배우의 매혹적 고백

그의 고백은 점점 더 흥미로워졌다. ‘지금도 충분히 연기를 잘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상도 여러차례 받아 연기에 대해서는 인정받았지 않느냐?’라는 반문을 펼쳤다.

“내 능력에 상관없이 상을 받은 것 같다. ‘천운’이 들었던 것 같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는 으레 예의상 겸손하게 하는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이어지는 말이 더 흥미롭다. “첫번째 수상전화가 왔을 때 ‘저요?’라며 깜짝 놀랐다. 두 번째 수상전화가 왔을 때 ‘뭐지 이게?’라며 의문을 표했다. 세 번째 수상전화가 걸려오자 ‘예. 예’ 하고 우선 전화를 끊고 난 뒤 생각했다. 그리고 ‘혹시 몰래 카메라 일수도 있겠다. 누가 날 놀리려고 작정했나보다. 라고 가상의 시나리오까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기발한 사고의 소유자인 김수현은 수상식 전까지 “진짜인가? 단정하게 차려 입고 갔는데, 깜짝 이벤트이면 어쩌나?”하는 고민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러나 세 번의 상은 모두 진짜였고, 진짜로 3관왕을 거머쥐었다. 그의 연극인생 역시 진짜이다.

연극 ‘오감도’의 이상 역 ‘갈매기’의 뜨레플레프 역, ‘사랑이 온다’의 동수 역 모두 만만치 않다. 배우의 내면을 온전히 쏟아내야 연기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한 캐릭터로 ‘쭈욱’ 가냐고 질문을 던졌다. “화내고 괴로워하는 역할이 쉽지 않다. 가끔 사랑스러운 역할도 해보고 싶다. 예전에 ‘멜로 드라마’라는 연극을 지방무대에서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참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곧 연극 ‘연애시대’ 무대에 서게 될 것 같다. 배우 김영필과 김다현이 했던 리이치로 역이다.”

낯가리고 극도로 노출되기를 꺼려했던 자신이 수백명의 사람 앞에서 연기해야 하는 연극배우로 사는 게 어색하면서도 신기하다. “대본마다 겪어나가야 하는 인생이 있다. 그 과정이 매번 서툴면서도 또 하고 있는 거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인터뷰 말미 김수현은 소설 ‘감상적 킬러의 고백’을 사 놓고 아직도 펼쳐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제목을 듣고 나름대로 떠올린 이미지가 있는데 막상 책을 읽으면 날라가 버릴 것 같아 두렵다. 책곶이에 꽂혀있는 걸 보고 내용을 혼자 상상하고 있다. 평생 안 펼쳐볼 수도 있다” 그 고백 영향일까? 인터뷰 내내 '감상적 킬러=김수현'이라는 공식이 성립 돼 웃음이 터져나왔다.

배우 김수현의 기발하고 인간적인 감상적 고백은 그렇게 묘하게 사람을 끄는 힘이 있었다. 

공연칼럼니스트 정다훈(otrcoolp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