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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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와 ISD 논의 ‘한계’… 폐지 수준 합의는 불가능

재협상 어떻게 될까
ISD 체결 안한 호주에 필립모리스 우회소송…‘만능방어장치’는 오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22일 국회를 통과했지만 비준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투자자·국가소송제(ISD)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청와대가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제안한 ‘선 비준안 처리 후 ISD 재협상’ 입장은 유효하다고 밝힌 만큼 미국과의 재논의가 불가피하다. ISD 논의는 한·미 공동위원회와 서비스 투자위원회 중 한 곳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양국이 설립에 합의한 서비스 투자위원회가 논의 창구가 될 공산이 크다.

미국도 이미 ISD 논의 가능성을 열어놓아 FTA 발효 후 양국 간 논의 착수는 시간문제이지만, 전망이 쾌청하지는 않다. 논란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한 채 시간만 끌게 될 것이란 전망이 대체적이다. 물론 단심제를 재심제로 바꾸거나 투명성을 강화하는 정도의 절차적인 문제라면 타결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야당 등 비판론자의 요구를 반영하려면 ISD 폐지 수준의 협정문 수정을 해야 하는데 이런 논의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를 뜯어고칠 경우 미국은 의회에서 이를 다시 논의해 통과시켜야 한다. 양국 정부 모두 임기가 다 돼가는 정치적 여건도 추동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난장판 국회 22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하자 민주당 당직자와 보좌진이 본회의장에 들어가기 위해 국회 본청 정문 앞에서 출입을 막고 있는 경위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재문 기자
첨예한 ISD 폐지 논란 속에 세계 최대 미국 담배업체 필립모리스가 ISD 체결국가를 우회통로 삼아 호주 정부를 제소한 일은 ISD 논의의 새 변수로 주목된다. 이번 소송은 담뱃갑 포장지 규제가 발단이 됐다. 호주 정부가 금연운동 차원에서 모든 담뱃갑 포장지를 밋밋하게 통일하려 하자 미국의 세계 최대 담배기업인 필립모리스가 수십억 달러 피해가 ‘예상’된다며 ISD를 발동한 것이다. 일견 “다국적기업 횡포에 정당한 국가 공공정책이 훼손당할 수 있다”는 ISD 폐해의 전형적 사례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2005년 발효된 미·호주 FTA는 호주 요청으로 ISD가 빠졌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한·미 FTA 반대진영은 호주를 ‘모범 사례’로 꼽았다.

이런 상황에서 필립모리스가 호주와 ISD가 포함된 양자투자협정(BIT)을 체결한 홍콩 법인을 통해 호주 정부를 제소하는 우회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호주는 23개국과 체결한 BIT 대부분에 ISD 조항을 넣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한·미 FTA에서 ISD가 야당 요구대로 빠져도 세계 곳곳에 지사를 둔 다국적기업이 얼마든지 한국 정부를 제소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유럽연합(EU)을 제외한 6개국과 ISD가 들어간 FTA를 체결했으며 ISD 포함 BIT는 81개에 달한다. 결국 “앞문(한·미 FTA)만 막아봐야 소용없다. 옆문, 뒷문 다 열려 있는 상태”라는 ‘ISD 글로벌 대세론’에 한층 힘이 실리게 된다.

“피할 수 없는 싸움(국가제소)인 만큼 차라리 이길 수 있도록 룰을 정비하고 체력을 기르는 게 옳은 선택”이라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무역협회 조성대 수석연구원은 “필립모리스가 발생하지도 않은 손실을 예상해 소송을 거는 등 패소 가능성이 높은 편”이라며 “비슷한 금연정책을 추진 중인 다른 국가에 압력을 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성준·이귀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