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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업 논설위원 |
저장조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방사능을 차단하는 특수복장을 갖추어야 했다. 완전무장을 하고 저장시설로 들어서니 냉각수조 속에 잠긴 사용후 핵연료가 푸른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방사능이 방출되면서 만들어내는 빛이라고 했다. 직사각형 수조의 양옆 문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봉인조치가 돼 있었다.
우리나라는 고리 등 4개 원전 본부에 2010년 6월 말 현재 1만1121t의 사용후 핵연료가 보관돼 있다. 또 매년 이들 본부 원자로 21기에서 발생하는 사용후 핵연료가 700t에 달한다. 이 때문에 2016년이면 저장시설이 포화상태가 된다고 한다. 더구나 정부는 2016년까지 원전 7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사용후 핵연료는 타지 않고 남아있는 연료가 95%가량이나 된다. 이를 재처리해 활용하면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고, 폐기물량도 그만큼 줄어 저장시설 부족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재처리가 저장 부족난 해결의 관건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은 핵연료 재처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에 재처리 권한이 없는 것은 한미원자력협정과 관련이 있다. 1974년 체결된 이 협정은 한국이 미국 동의 없이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거나 제3국에 이전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재처리를 허용하면 한국이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한미원자력협정은 2014년 만료된다. 우리로서는 대표적인 불평등 조약을 개정할 수 있는 기회다. 한국이 2009년 협정의 개정 필요성을 처음 제기했을 때만 해도 미국의 입장은 부정적이었다. 1992년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빌미가 됐다. 남한과 북한이 핵재처리 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해 놓은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은 별다른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일부터 서울에서 사흘 일정으로 진행 중인 4차 협상도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비롯한 평화적 핵주권 문제를 비중 있게 논의하고 있다. 미국이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2013년까지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돼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면 한국은 새로운 원전시대를 맞게 된다.
사실 IAEA 헌장이나 핵확산방지조약(NPT)에는 재처리 시설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 NPT는 핵무기를 갖지 않은 회원국이 재처리 시설을 보유하고 플루토늄 등을 추출하더라도 IAEA 사찰을 통해 그 사용처를 감시받으면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IAEA의 핵사찰을 모범적으로 받아온 한국이 재처리 시설을 가져서는 안 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사문화된 지 오래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한국의 재처리 권한이 확보되면 비핵화선언은 법률적으로도 자동 폐기되는 셈이다. 우리가 재처리권을 얻으면 북한에 대해 평화적 핵 이용을 담보로 핵무기 포기를 이전보다 더 강하게 국제사회와 함께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고, 평화적 핵 이용권을 주장하는 만큼 이를 거절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한·미 양국이 10년 동안 공동연구키로 한 파이로 프로세싱에 의한 사용후 핵연료 관리 문제도 어떤 방식으로든 개정 협정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세계 선두를 달리는 이 신기술을 적용하면 사용후 핵연료의 부피를 현재의 20분의 1로, 폐기물 저장소 규모는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한국 원자력이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안경업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