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번 신상털기는 대법원 판결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기본지식도 없는 이들에 의한 ‘무모한 행동’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상털기는 특정인의 민감한 신상정보를 인터넷에 마구 유포하는 행위로, 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
대법원 재판은 1∼3부에 의한 재판과 전원합의체 재판으로 나뉜다. ‘다수결’로 판결하는 전원합의체 재판과 달리 부 재판은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한다. 부에 속한 대법관 중 한 명이라도 다른 의견을 주장하면 판결이 불가능하다. 이 경우 사건은 부를 떠나 전원합의체로 옮겨져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13명이 투표로 정한다. 즉, 정씨 사건에 관여한 대법관 3명이 ‘만장일치’를 이뤘기 때문에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이 대법관의 동생인 이광범 변호사는 진보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전 대법관은 대법원에서 가장 진보적인 판사로 통하고, 양 대법관은 중도 성향의 학자 출신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씨 지지자들은 마치 이 대법관 혼자 유죄를 결정한 것처럼 그에게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이처럼 모순된 태도는 ‘나꼼수’ 지지자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 정치인과 진보성향 인사들은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1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을 때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줬다”며 사법부를 칭송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정씨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지자 태도를 180도 바꿨다. 민주통합당 박영선 의원 등은 “정치 판결이자 정치보복”이라며 대법원을 비난했고, 소설가 공지영씨는 “사법부에 조종이 울린다”는 극단적 표현까지 썼다.
전문가들은 개인적 호불호에 따라 판결을 재단하고 법관을 평가하려는 세태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명지대 조동근 교수(경제학)는 “환영하는 판결은 문제삼지 않고, 싫어하는 판결은 판사 ‘신상털기’까지 해가며 딴죽을 거는 자세는 한마디로 기준이 없는 것”이라며 “자칫 대한민국의 질서가 무너지고 법치주의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조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