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골만의 빈국 미얀마가 중국·일본 간 외교 격전장으로 변하고 있다.
25∼26일 중·일 양국 정상이 베이징에서 회담을 하고 있는 사이 일본은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외상을 미얀마에 보냈다. 앞서 20일에는 중국의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미얀마를 찾았다. 전 세계의 시선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쏠려 있는 사이 또 다른 폐쇄국가 미얀마에서 중·일 간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모습이다.
26일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겐바 외상은 이날 미얀마 수도 네이피도에서 우나 마웅 르윈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졌다. 겐바 외상은 미얀마에 일본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투자협정’ 체결을 제안해 양국이 합의했다. 양국은 이르면 내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교섭을 시작할 예정이다. 겐바 외상은 지난 2003년부터 중단한 공적개발원조(ODA) 공여를 재개하겠다는 방침도 표명했다.
겐바 외상은 이날 테인 세인 대통령과 아웅산 수치 여사 등도 면담했다. 수치 여사는 “일본이 미얀마 소수 민족 지원과 빈곤퇴치 등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며, 가까운 장래에 일본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일본 외상이 미얀마를 방문한 것은 2002년 이후 9년 만이다. 일본 언론들은 겐바 외상의 이번 미얀마 방문이 동남아 요충지인 미얀마와의 경제협력 관계를 강화해 민주화를 후원하는 한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시도라고 분석했다.
미얀마는 노동임금이 태국의 6분의 1 수준인 데다 천연가스과 루비, 비취 등의 자원이 풍부하다. 현재 군사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공사가 중단돼 있지만 ‘동서경제회랑’과 ‘남부경제회랑’ 등 동남아의 대규모 물류 루트 구축 사업이 완료되면 중국과 인도, 동남아를 묶는 ‘물류의 요충지’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동안 미얀마는 중국의 독무대였다. 중국은 국제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됐던 미얀마 군사정권을 옹호하면서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 뿐 아니라 막대한 경제적 이권을 챙겨왔다. 따라서 일본이 이런 미얀마에 대규모 경제 투자를 추진하는 것은 중국의 미얀마 주도권에 대한 일종의 도전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중국은 이달 초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미얀마를 56년 만에 방문해 관계 개선에 나선 데 이어 일본 정부까지 미얀마에 ‘러브콜’을 보내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중국 정부는 김 위원장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북한통’인 다이 위원을 20일 미얀마에 보내 양국 간 외교·군사·경제 관계 등에서 현안을 논의토록 했다.
미얀마는 중국의 동남아 지역 패권 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파트너로 꼽히고 있다. 특히 뱅골만에 접한 미얀마의 항구들은 중국이 믈라카 해협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인도양과 중동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로서 활용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도쿄=김동진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