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 자녀가 '왕따' 등 학교폭력에 심각하게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문화가정 자녀 특성화 교육으로 이름난 학교에서조차 교사가 이런 문제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글라데시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A(11)군은 요즘 부모에게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한다. 초등학교 4학년인 A군은 "가장 고통 없이 죽는 법을 알고 싶다"라는 말까지 입에 올린다.
A군의 아빠 하빌 우딘(41)씨는 8일 "어떻게든 잘 헤쳐나가겠지라고 여기다가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듣고서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고 말했다.
우딘씨는 작정한 듯 지난해 5월 있었던 학급 내 집단폭행 사건 얘기를 꺼냈다.
담임교사가 오전 늦게까지 출근하지 않은 데다 대체 교사도 들어오지 않아 아이들만 교실에 방치된 날이었다.
지루해진 아이들은 한 학생의 주도로 '반에서 가장 재수 없는 아이'를 뽑는 투표를 했다. 단 두 표를 제외하고 모두 A군을 지목했다.
결과가 나오자 남학생 3명이 A군을 교실 뒤쪽으로 끌고 가 바닥에 쓰러뜨리고서 발로 마구 찼다. A군은 다리에 상처가 부어오르도록 맞기만 했다.
담임교사는 뒤늦게 나타나 사태를 수습했지만 우딘씨 부부에게 상황을 설명하거나 유감을 전하는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아이는 사흘 동안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폭행 사건 이후 A군이 학교 문제로 더욱 힘들어하자 다급해진 부모는 몇 달 뒤인 지난해 10월 학교 측에 학생 상담을 요청했다.
담임과 이뤄진 몇 분간의 상담에서 A군은 집단 따돌림 등 학교생활의 고충을 털어놨다. 당연히 학교 측의 추가 조치도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우딘씨 부부는 상담과 관련해서도 담임으로부터 결과를 통보받지 못했다. 학교생활도 달라진 것도 없었다. A군은 우울증이 깊어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A군이 다니는 서울의 초등학교는 국내에서 다문화가정 자녀 비중이 가장 큰 다문화교육 거점학교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전교생 800명 가운데 8%인 60여명이 다문화가정 자녀로, 한 반에 1~3명꼴이다. 이 학교는 다문화가정 학생·학부모를 대상으로 한국어교실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시범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학생들 내에서 벌어지는 다문화가정 자녀에 대한 차별 문제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해당 학교장은 "지난해 5월 불미스러운 일로 학부모가 서운했던 면이 있었는데 담임과 이야기해 잘 해결한 것으로 안다"며 "이후 A군이 상담 요청했다는 얘기를 듣고 담임교사에게 더 주의를 기울여 지도해 달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다문화가정 학생 비중이 높아 여러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A군 외에 다른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서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장은 A군이 집단 따돌림을 당한 사실과 자살 의사를 표시할 정도로 심리적 불안감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우딘씨는 "이웃에 사는 다문화가정 아이도 아들과 같은 4학년인데 왕따를 더 심하게 당한다고 한다.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면 아이가 혹시나 불이익을 당할까 봐 참고 지내는 다문화가정이 더 많다"고 말했다.
우딘씨가 더 걱정하는 것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둘째 아들과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딸이다. 둘째 아들은 유치원 때부터 왕따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들은 어렸을 때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왕따를 당하면서 점차 '나는 저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첫째 아이가 차별적인 말을 들어도 이제는 무덤덤해하는 걸 보면 더 안쓰럽다"고 했다.
우딘씨는 "나라도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아 굳은 결심을 하고 나섰다. 학교와 교육 당국은 다문화가정 아이가 왕따 등 차별에 시달리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