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책동네 산책] ‘한류의 뿌리’ 한국사 제대로 알릴 때

K-팝(한국대중음악)과 드라마가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시작된 한류가 이제는 세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분야는 우리 문학과 음식, 건축, 의복 등에까지 번지는 것 같다. 한국 문화의 연원은 물론 우리 역사에 면면히 스며 있다. 우리 역사가 문화의 해외 전파에 매우 중요한 콘텐츠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사를 세계에 제대로 알리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9월 학술대회 참가차 대만의 타이베이(臺北)에 갔다가 대형서점에서 눈에 띄는 문고판 영문 책이 있어 구입했다. 눈으로 보는 세계사(Eyewitness Companions World History)였는데, 512쪽으로 꽤 두꺼웠다. 저자 필립 파커(Philip Parker)가 영국의 돌링 킨더슬리(Dorling Kindersley) 출판사에서 2010년 낸 책이었다.

이 책은 영국은 물론 미국과 독일, 호주, 인도 등지에서 출판됐다. 독자들이 쉽게 갖고 다니며 읽을 수 있다. 사진과 그림, 도표가 선명하고 편집이나 내용이 좋아 세계적으로 많이 읽힐 것이다. 문장과 내용도 간결하고, 절반 정도는 사진으로 되어 있어 읽기도 쉽다.

이 책 본문 405쪽 가운데 한국사 관련 부분은 고작 2.5쪽이다. 전체 분량의 0.6% 정도에 불과하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전근대사를 불국사와 고려자기 사진 등을 넣어 극히 간략하게 2쪽 분량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6·25전쟁 관련 내용도 서술하고 있다. 세계 10대 무역대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모습이다. 이웃 일본은 모두 15쪽에 걸쳐 비교적 상세히 서술하고 있는데, 전체의 3.7%에 달하는 비중이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우리의 역사가 중국 한나라의 식민지인 한사군(漢四郡)부터 시작되고 있다고 쓰고 있다. 고구려는 한반도 북부지방에 있었으며, 1592년 조선을 침략한 일본은 중국군과 조선 수군에 의해 격퇴됐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런 결과는 외국 학자들이 중국쪽 사서나 일본인이 쓴 사서를 토대로 서술하기 때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구체적으로 우리 학계가 아직은 우물 안 개구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면 과한 비판인가.

필자가 몸담고 있는 동북아역사재단은 해마다 상당수의 외국어 서적을 발간하거나 지원해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한국과 한국인,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더욱 알고 싶어하는 시대가 됐다. 이젠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고 또 알리려고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보다 더 우리를 더 잘 아는 외국 학자들이 많다.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