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몸을 일으키는 것'이다.
서울 기온이 영하 8도까지 떨어졌던 날, 방 안 온도는 영하 2도였다.
입김이 허옇게 나오는 한겨울의 쪽방 안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곳은 이불 속 전기장판이다. 무기력을 떨치고 전기장판에서 벗어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추위와 열악한 시설 때문에 화장실에 가거나 씻는 것, 식사와 청소를 하는 것 모두 번거롭기만 하다.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세를 고쳐 앉았지만 '이 추위에 뭘 하나…다 귀찮다'는 생각에 다시 이불 속에 파묻힌다.
의욕도, 다짐도 좁은 방 크기만큼 금세 쪼그라든다.
다른 주민은 어떻게 지내는가 싶어 단팥빵을 사 들고 인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문이 잠긴 방이 반, 사람이 있는 방이 반 정도 됐다. 오후 2시께 방에 있는 사람들은 일을 나가지 않았거나 아침 일찍 혹은 밤늦게 일하는 사람들이다.
문을 두드리면 며칠씩 방에만 있었던 것 같은 부스스한 머리를 한 40~50대 남자들이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민다.
한 평 쪽방 안의 풍경은 비슷비슷하다. 한구석에는 먹다가 치워둔 것 같은 찌개 냄비와 김치통, 라면 상자 따위가 있고 정리되지 않은 옷가지들이 쌓여 있다.
바닥에는 전기장판과 이불이 깔렸고 TV 화면은 켜진 채다. 희미하게 좀약 냄새가 난다.
"며칠 전에 이사 와서 인사 드리려구요." 살갑게 단팥빵을 건네도 대다수 사람은 알겠다는 짧은 대답과 함께 문을 닫는다. 대화를 이어가기 쉽지 않다.
금방 왔다가 떠나는 사람들, 오래 살아도 서로 방을 들여다볼 일이 별로 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문을 열어주는 사람들은 낫다. 방문 틈 사이로 TV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으로 봐서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노크 소리에 대답 없는 이들도 많다.
4층의 방문을 두드리자 한참 뒤 "뭐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인사를 하겠다는 말에 "필요 없어요!" 하는 날카로운 외침이 돌아왔다.
그나마 첫날 가장 나를 반긴 분은 4층 맨 끝방에 사는 한모(81) 할아버지였다.
오래전 이혼해 혼자 산다는 할아버지의 방에는 옷가지와 밥솥, 각종 잡동사니가 가득해 두 사람이 간신히 바짝 마주 앉을 정도의 공간만 남아 있었다.
늘 지팡이를 짚고 다니기에 사연을 물었더니 6·25 전쟁에서 다리와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며 국가유공자증을 자랑스레 내민다.
할아버지가 종이컵에 손수 타준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언뜻 보기에도 종이컵은 여러 번 쓴 것 같았다.
겨울의 쪽방촌은 여름보다 조용하다. 여름에는 더위를 피하려 밖으로 나와 삼삼오오 모이던 주민들도 겨울에는 온기를 찾아 들어간 한 평 쪽방 안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새벽같이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켜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추위와 가난, 질병 때문에 방 안에서 무기력에 시달리는 이들이 상당수다.
특히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하는 주민들은 의식주를 해결하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외출을 해봐야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수급비는 집구석에서만 딱 먹고살기에 좋아. 사람을 집에 가둬놓는다고 보면 되는 거지. 집 외의 세상을 구경할 수가 없어. 돈이 없으니 가고 싶은 데 못 가고 놀고 싶어도 못 놀고. 나가서 일하려 해도 일을 찾아볼 수가 없어."
쪽방생활안내서에 담긴 주민의 목소리다.
동자동 사랑방 고형렬 활동가는 "사람들이 방 안에 틀어박혀 자신만의 성을 쌓고 문을 쾅 닫아버리는 게 쪽방촌의 큰 문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방 안에 갇힌 사람들의 유일한 낙은 TV다. 그래서 주민들은 TV를 쪽방 생활의 필수품으로 꼽힌다. "TV는 있어?" 하는 질문에 없다고 대답하니 "하나 꼭 구해야 해. 안 그러면 심심해서 못 견뎌."라는 충고가 돌아왔다.
며칠 뒤 요란한 알람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꽤 시끄러운데도 아무도 방문을 열어 확인하거나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궁금해하지 않는 듯했다.
3일이 넘도록 오전, 오후 7시쯤 계속 울리기에 알람 소리의 근원을 찾아봤다. 한씨 할아버지의 방이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들여다봤더니 웬일인지 방이 깨끗하게 비어 있다.
"치매가 있어서 가끔 다른 방문을 두드리고 그러시더니, 이번에 꽃동네로 가셨어. 짐은 며칠 전에 다 뺐고."
관리인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살금살금 방에 들어가 덩그러니 남은 알람 시계의 전원을 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