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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담긴 내용, 우리 전통사상 속에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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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토착화 작업하는 이근덕 신부
“교회서도 쇄신 위해 우리 전통에 관심”
천주교 신앙 바탕 한국 고유문화 접목…원효대사·정약용 등의 사상 재조명
“복음이 가르치고 있는 하느님 나라는 자기 고유의 문화에 깊이 젖어 있는 사람들이 생활화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 건설에서 인류의 모든 문화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1963∼78년 교황 바오로 6세)

“여러분의 믿음의 조상은 복음을 자신의 문화와 민족적 주체성 안에 토착화시키려고 훌륭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숫되면서도 그윽하고 아름다운 말로 설교하고 노래와 기도와 찬가를 짓고 교리책과 신공책을 엮어 내되, 자신의 문화와 심성 깊숙이 뿌리내린 말로 함으로써 사람들의 머리와 마음에 곧장 와 닿게 하였습니다. 만약 그런 노력을 본받아 꾸준히 이어 나간다면 어김없이 그 주체성 안에서 문화의 복음화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1984년 방한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이근덕 신부는 “선조들은 천주교의 하느님은 아니지만 ‘절대’를 추구했다”면서 “이 시대 천주교인들도 한국 역사에 흐르는 사상과 인물들의 고뇌 등을 현재적 관점에서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천주교회가 내놓은 자료 곳곳에는 복음의 토착화에 관한 과거 교황들의 언급이 수없이 등장한다. 실제로 천주교는 개신교와 달리 전통적인 제례를 장례의식으로 주체적으로 수용하면서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잊게 했다. 그 아픈 기억이란 신유박해, 신해박해 등 18세기 말∼19세기 초에 일어났던 천주교 탄압과 피로 물든 순교 사건들을 말한다. 천주 신앙을 받아들인 백성들의 커다란 희생의 이면에는 정치적 이유도 있었지만, 당시 시대정신이었던 유교를 알지 못했던 탓도 없지 않다. 이후 1939년 천주교는 제사를 인정하는 등 토착화를 시도했다. 또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년)의 교회의 토착화 강조에 이어 최근 개신교의 배타적 복음주의에 염증을 느낀 이들마저 수용한 천주교는 신뢰성 높은 종교로 한국 내에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하지만 토착화 노력은 여전히 미진하다. 지난 20일 경기 수원 화서동성당 사제관에서 만난 이 성당 이근덕(44) 주임 신부는 “서구 문물에 젖어 있는 우리가 포기했던 우리 본래의 것들이 이제 새로운 것이 됐다”면서 “계속해서 쇄신하지 않으면 주저앉고 만다는 인식과 자기변화를 위한 노력으로 교회 내에서도 관심이 많다”고 토착화 신학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음달부터 6월 말까지 열리는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의 월례신앙강좌 ‘한국의 전통사상과 그리스도교적 이해’라는 주제 강의에 나서는 이 신부는 중국 유학파다. 그는 수원가톨릭대에서 한국의 전통을 현재로 불러들여 젊은 신학생과 소통하는 소장 연구자다.

베이징(北京)대에서 9년 반 유학하면서 중국철학(성리학)을 전공해 석·박사학위를 취득한 이 신부는 “한국인으로서 선조들의 나라, 삶에 대한 고뇌 등 현대인들과 공감할 수 있는 찾아가는 작업”이라고 강의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2006년 귀국 후 5년간 재임한 분당성마태오성당에서는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과 논어(論語) 등을 신도들과 강독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8월 말 부임한 화서동성당에서는 전통과 신앙을 접맥한 미사 강론이나 특강을 하고 있다. 이번에 그가 맡은 강의는 신라시대 원효대사, 고려조 보조국사 지눌,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 등 한국 역사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사상가들이다. 이 신부는 “당시 인물들은 지금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아니지만 철학적인 관점에서 절대에 대한 사유를 추구했다”면서 “불교의 부처, 조선시대 하늘(天) 등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당시 그들의 인식의 범주에는 하느님은 없기 때문에 천주교 신앙을 꿰맞추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라면서 “선조들이 추구한 ‘하늘’이라는 지향점, 나라와 시대에 대한 고민 등 사유의 패턴은 시대는 다르지만 한국인으로서 의미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천주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을 접목해 가는 이 신부는 앞으로 토착화의 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천주교회 내부의 인식도 전했다.

“우리 성당 내 베트남공동체 미사에 매주 200여명이 참석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베트남공동체 내 결혼은 우리에 비해 3배 정도로 빈도가 잦다는 것이죠. 그들이 형성한 문화, 한국 내 다문화가 우리 안에서 새로운 토양이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 신부는 “성경 안에 있는 내용은 우리 전통에도 있다고 설명하면 신학생과 신자들 모두 관심을 기울인다”며 “자본이나 물질문명에 쉽게 물들어가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선조들의 자의식이나 자존감, 세상에 대한 고뇌 등은 공유할 만한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는 난해한 고전을 성당 내 소모임 등을 통해 신자들과 나눠볼 계획이다. “‘맹자’나 ‘장자’는 문장이 길고 어려워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볼 생각입니다.”

수원=신동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