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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 만에 무너진 299석… 당리당략에 민심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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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만 챙긴 여야
개선안 공염불 우려

여야가 27일 4·11 총선 44일을 앞두고 게임의 룰인 선거구 획정 작업을 가까스로 마무리했다. 이번 선거구 협상은 역대 최악의 밀실 야합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야합’에는 이구동성이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을 막론하고 선거구 조정과정에서 정치개혁의 명분은 사라지고 당리당략만 판을 쳤다. 그토록 바라던 300석 시대를 열었지만 ‘저질 국회’라는 비난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절차와 협상 내용 등 여러 면에서 문제 투성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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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은 국회가 획정위안을 존중토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여야는 획정위안을 무시한 채 처음부터 농어촌지역 선거구 폐지에다 초점을 맞췄다. 교수와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민간 선거구획정위는 인구 하한선에 놓인 농어촌 지역구를 없애는 대신 대도시 일부 구의 합구를 내용으로 하는 획정안을 국회의장에게 보고했다. 헌법정신에 따라 ‘상·하한선 3대 1 이내’라는 인구 기준을 중시하면서 농촌지역의 대표성을 보완하는 차원이었다.

여야가 의도적으로 선거구 조정 협상을 벼랑 끝으로 끌고온 측면도 강하다. 선거구획정위는 지난해 11월 획정안을 보고했지만 여야는 소 닭보듯 하다가 정치적 데드라인인 16일 국회 본회의도 그냥 흘려보냈다. 다급해진 중앙선관위가 개입, ‘19대 국회에 한정한 300석 증원안’을 내놓자 여야는 마지못해 응하는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싸움질이나 하는 국회가 뭐 하는 일이 있다고 혈세를 더 쓰기 위해 의석수를 늘리느냐”는 국민적 정서 때문에 의석수 증원은 번번이 실패했다. 이번에는 정치권이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 됐다.

볼썽사나운 다툼은 막판까지 이어졌다. 폐지 대상이 된 경남 남해·하동 선거구 주민은 상경시위를 벌였다. 여상규 의원은 이날 정개특위 회의실에 뛰어들어 “농어촌 지역구를 없애는 게 정의고 원칙이냐”고 고성을 질렀다. 정개특위 소속인 이은재(새누리당), 류근찬(자유선진당) 의원은 회의석상에서 용인 기흥구와 충남 천안의 선거구 분구 실패에 유감을 표시했다. “지금 와서 그런 소리하면 어쩌자는 것이냐”는 비난을 여야 간사로부터 받았다. 경북 상주가 지역구인 새누리당 성윤환 의원이 농어촌 지역구 폐지를 비판하자 새누리당 주성영 의원은 “자기가 남해 하동(폐지)안을 내놓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리 하는 거냐. 먼저 인간이 되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5월까지가 시한인 정개특위는 앞으로 개선책을 논의한다. 먼저 논의될 사안이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상설화다. 선거구획정위가 상설기구로 바뀌면 선거구획정위 조정안은 국회 법사위와 정개특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곧바로 상정할 수 있게 된다. 선거구획정위원은 학계·법조계·언론계·시민단체 및 선거관리위원회가 추천하는 자 가운데 11인을 위촉하도록 한 현행 법률도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나 정치권이 선거구 획정업무에서 손을 떼지 않고, 선거구획정위가 의결기구로 격상되지 않으면 독립성 확보는 백년하청이라는 비판이 많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은 선거구획정위를 입법부 산하가 아닌 중립적 위원회나 정부 산하기구로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주의회에서 선거구를 획정한다. 주의원은 연방선거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범적인 모델은 영국식이다. 1944년 설립된 선거구획정위원회(The Boundary Commission)는 하원 의장이 명목상 의장을 맡고 있지만 실제 활동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획정위에 선거구 조정에 대한 최종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중립성의 핵심 조건이다.

백영철 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