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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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유영숙 환경부장관

“환경 보존 + 경제 성장 동시 추구… 이제는 녹색경제시대”
해빙기 구제역 매몰지 관리 강화…침출수 유출 의심지 71곳 통보
명함부터 달랐다. 통상 명함에 얼굴사진 등을 넣는 것과는 달리 산양 사진이 들어 있었다. 산양이 주로 사는 강원도 출신이어서 그러려니 했다. 고향 사랑이 남다른 듯했다. 하지만 예상은 금세 빗나갔다. 명함에 산양 사진을 넣은 것은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서란다.

그의 명함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멸종위기 동물인 산양만이 들어간 게 아니었다. 반달가슴곰 등 다른 멸종위기 동물 사진이 하나씩 담긴 명함이 다섯 가지나 더 있었다. 명함이 예쁘다며 한 세트를 달라고 해 6장을 한꺼번에 건넨 적도 있다고 했다.

영문으로 된 명함 뒷면에는 멸종위기 야생식물 사진이 들어 있었다. 외국인과 만날 땐 이 식물 이야기로 대화를 풀어 나간다고 한다. 지난달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유엔환경계획(UNEP) 특별집행이사회 및 세계환경장관회의에서 만난 일본인은 예전에 받았던 명함을 보고 벤치마킹했다며 새 사진을 넣은 명함을 건네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장관 인사청문회와 국정감사 때 야당 의원들에게 많이 혼났지만 유일하게 칭찬받은 게 명함”이라며 웃었다. 명함을 통해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유영숙 환경부 장관의 이야기다.

취임 10개월째를 맞은 유 장관을 6일 정부과천청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각종 업무를 챙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사전에 인터뷰를 약속하고 갔지만 약속 시간보다 20여분 지나서야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는 1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취임한 지 9개월이 지났는 데 힘든 적은 없었나.

“항상 힘들고 어렵다. 상상 못할 만큼 일이 많다. 하지만 나 자신이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면 모든 순간이 감격스럽다. 20여 년간 연구원일 때는 나만 잘하면 됐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또 우리 직원이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하느냐에 따라 후손들이 그 영향을 받는다. 그만큼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

―최근 쟁점으로 떠오른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제도에 대한 기업들의 반대가 크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지 못해 아쉽지만 18대 국회 임기가 끝나기 전에 통과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산업계의 우려 사항을 잘 알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이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부 제도 설계 때 고려할 방침이다.”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입법화 역시 기업들의 반발이 예상되는데.

“국민의 건강 보호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문제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제도가 느슨해 화학물질 수입량 증가에 따른 국민건강 위해 우려가 큰 반면 제조량은 감소해 산업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고 있다. 2006년과 비교하면 2010년 화학물질 수입량은 20.4% 늘었으나 제조량은 11.3% 줄었다.”

―수질오염총량제 1단계 평가에서 20개 지자체가 기준에 미달했는데, 어떤 제재가 뒤따르나.

“낙동강·금강·영산강 3대강의 1단계 수질오염총량제 평가 결과 전체 오염물질 배출량은 할당치의 75%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지자체별 평가에서는 잠정적으로 68곳 중 20곳이 기준치를 초과했다. 최종적으로 할당된 오염량을 초과한 지자체는 관계법률에 따라 도시개발과 산업단지 개발 사업 등의 승인·허가가 제한된다.”

―국립공원 케이블카 시범사업자 선정을 둘러싸고 잡음이 적지 않은데.

“국립공원 케이블카 사업은 지역개발을 위한 수익사업이 아니다. 국립공원을 보전하고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공원사업이다. 시범사업은 자연친화적인 공원환경 조성에 기여하는 지역만 선정될 것이다. 기존 탐방로와 연계되지 않아야 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탐방객은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야 하는 등 환경성을 충족해야 한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활강경기장 건설 예정인 가리왕산의 생태계 훼손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리왕산(중봉)은 생태자연도 1등급 권역이 다수 포함된 생태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곳이다. 따라서 사업지역에 대한 정밀조사, 전문가 검토, 환경영향 예측·분석 등 다각적이고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국가적 행사이므로 성공적인 환경·문화올림픽으로 치를 수 있도록 노력하고 협력할 계획이다.”

―구제역 매몰지의 침출수 유출 우려가 여전하다.

“위험 우려 매몰지 300개소를 선정해 환경영향조사를 했으며, 침출수 유출 의심 매몰지 71곳을 지자체에 통보해 이설이나 침출수 수거 강화 등을 지시했다. 해빙기를 맞아 농림수산식품부 주관으로 정부합동 매몰지 점검을 하고, 환경영향조사와 지자체 관측정 모니터링 등을 통해 침출수 유출 의심 매몰지 관리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미군기지의 환경오염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해 불거진 경북 칠곡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대한 조사는 그동안 발생했던 다른 미군기지 환경오염 사고 때와는 달리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졌다. 올해는 주한미군 측이 기지를 운영할 때 적용하는 자체 환경관련기준(EGS) 개정을 추진하고, 주한미군이 수행하는 자체 실태조사 결과를 우리 정부와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지자체의 낡은 상수도관을 교체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현재 전국 상수도관망의 25%가 21년 이상 된 낡은 관으로 녹물 발생 등의 주원인이다. 지난 10년 동안 낡은 수도관으로 인한 누수로 6조원 수준의 재정 손실이 발생했다. 환경부는 2010년부터 올해까지 재정이 열악한 36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낡은 상수도관망 개량을 위해 980억원을 지원했다. 내년부터는 민간투자 방식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4대강 사업 추진 과정을 보면 환경부가 환경보전을 포기한 것 같다는 비판도 나오는데.

“4대강 사업이 수질을 악화시키고 수생태계를 훼손한다는 일부 민간 단체들의 주장은 왜곡된 측면이 있다. 4대강 전 수계의 B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 등 일반수질은 개선 추세다. 또 올해 상반기에 16개 보가 모두 완공되면 유량확보가 보다 용이해져 갈수기에 나타나는 고질적인 수질오염과 오염사고도 적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전 정부들과 비교해 환경부의 역할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있다.

“환경정책이 반드시 보전만 해야 하는 게 아니다. UNEP 회의에서도 지난 40년간 고민한 끝에 최근 내세운 것이 녹색경제(Green Economy)다. 그냥 보전만 해서는 이 지구가 살아나갈 수 없다. 빈곤층을 구제하면서 환경보호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과 맥이 닿는다. 환경을 최대한 보전하면서 경제성장도 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환경부가 해야 할 일이고 환경정책도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환경·시민단체와 정부의 관계가 짧은 시간에 단절된 것은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생각이 다르더라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함께 논의하고 고민해 나가야 한다.”

―국제환경논의에서 한국의 위상은.

“최근 케냐 환경장관회의에서 첫째 날은 패널 토의에서 패널 참석을, 둘째 날은 녹색경제 세션에서 공동의장직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아 이를 수행했다. UNEP의 한국에 대한 평가와 기대를 읽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2008년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국가비전을 선포하고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를 설립하는 등 녹색성장을 선도하는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 예산이 5조원에 육박한다. 가장 중점을 두는 분야는.

“올해 환경부 예산은 4조9897억원이다. 정부 출범 초기인 2008년의 3조5515억원보다 40.4%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의 환경개선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올해는 그간의 정책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맑은 물, 녹색 성장 등 미래 환경가치 실현에 중점 투자할 계획이다.”

―끝으로, 직원들에게 현장행정을 강조하는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

“환경의 패러다임이 수용자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환경보호나 자연보호보다 생활환경이 더 강조되고 있다. 환경보건, 실내환경, 소음기준 같은 것들이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어떻게 하면 국민이 편한 환경에서 살 수 있게 할까 노력해야 한다. 직원들에게 고객(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묻는다. 보고서를 제출했다가 나중에 설문조사 결과를 추가해 오는 경우도 있다. 직원들은 힘들어 하지만 적지 않은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담=문준식 사회부 차장, 정리=우상규 기자

■유영숙 환경부장관 프·로·필

▲1955년 강원 원주 출생▲진명여고▲이화여대 화학과▲미 오리건주립대 생화학 박사▲KIST 생체과학연구본부장▲KIST 연구부원장▲한국생화학분자생물학회 이사▲대한화학회 이사▲제3회 아모레퍼시픽 여자과학자상 대상(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