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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전시장’ 백화점 배경…홈리스 가족의 모험담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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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백화점’
소비 자본주의 시대에 백화점 만큼 흥미진진한 무대가 있을까. ‘두근두근 백화점’(미래인)은 세대를 망라한 욕망의 전시장으로 상징되는 백화점을 배경으로 어느 홈리스 가족의 모험담을 그려낸 청소년소설이다. 세 명의 주인공은 백화점 매장은 물론 화장실, 야외옥상까지 종횡무진하며 긴박하게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작가의 스토리텔링 솜씨가 일품이다.

백화점 매장에 있는 물건들을 다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설은 이 시대 소비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백화점 매장 앞에서 꿈꿨을 법한 판타지를 건드린다. 백화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을 돈조차 없는 남루한 홈리스 모녀가 백화점이 문을 닫는 황혼에서 새벽까지 백화점을 내 집처럼 ‘점거’하며 산다는 이야기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한 달간 백화점에서 살기. 이 기상천외한 미션을 세 모녀는 놀라운 임기응변과 가족애로 풀어나간다. 백화점 문 닫기 5분 전에 들어가 숨어 있을 곳만 찾으면 그날 밤 백화점은 이들 독차지다. 지하 식품매장에서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찾아 가전매장에 비치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면 식사는 해결된다. 무료 향수 샘플을 뿌린 채 침대 매장에서 가장 맘에 드는 호화 침대를 골라 여왕처럼 잠들 수도 있다. 발각될까봐 두려운 큰딸 리비의 걱정도 장난감 매장 앞에 서자 눈녹듯 사라져버린다. “우리한텐 세상에서 가장 큰 실내 놀이터였어요. 나 같으면 디즈니랜드나 뭐 그런 놀이공원에 가느니 스코틀리 백화점에 가겠어요. 물론 친구들 몇 명과 백화점을 독차지한다는 조건에서요.”

백화점 탐험 끝에 빨래를 해결할 곳도 찾았다. 직원 전용구역에 있는 세탁기였다. “잠옷 바람에 수건을 들고 스코틀리 백화점 안에 있으니까 옆에 있는 누구라도 꼭 끌어안고 싶은 기분이었거든요. 그래서 앤젤린을 번쩍 들어 꼭 안아줬어요. 우리는 한동안 싸우지 않았어요.”

영국 BBC 특집드라마로 제작된 ‘두근두근 백화점’ 장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도 많다. 폐점 5분 전, 백화점 직원들의 눈길을 따돌리고 침대매장의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숨기, 야간 순찰을 도는 경비원의 눈을 피하기 위해 캠핑용 텐트로 잠자리를 옮기는 장면 등에선 저절로 책장을 빨리 넘기게 된다.

철없고 대책 없는 엄마, 그런 엄마를 ‘돌봐야’ 하는 조숙한 큰딸의 캐릭터 대비도 유쾌하다. 시한폭탄처럼 언제 (울음이) 터질지 모르는 둘째 딸의 모습은 백화점에 숨어살아야 하는 이 모험담에 가장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하지만 무능한 엄마와 헤어져 보호시설로 보내지는 것보다 세 가족이 함께라면 어떤 위험도 감수하겠다는 이들의 가족애가 작품의 온도를 높인다. 어린 동생 앞에서 ‘넌 아무 걱정 마. 걱정은 나 혼자 할게’라고 생각하는 언니, 걱정이나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아이들 앞에서 이 절박한 생존게임을 재밌는 놀이와 모험으로 포장하는 엄마의 여유로운 모습이 인상깊다. 많은 것을 소유하면서도 늘 걱정거리와 짜증을 달고 사는 요즘 엄마들에게 필요한 덕목 같다. 사회 취약계층 어린이의 눈으로 묘사되는 현대 소비문화가 서글프지만,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가 시종일관 유쾌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상력에 사회비판 메시지를 버무려내며 ‘아동·청소년 모험소설의 왕’이라 불리는 영국 작가 알렉스 쉬어러의 작품. 쉬어러의 소설 ‘초콜릿 레볼루션’은 BBC에서 TV 미니시리즈로 제작됐고 일본에서는 만화영화로 제작돼 국내 개봉되기도 했다. ‘두근두근 백화점(The Greatest Store in the World)’ 역시 BBC에서 드라마로 제작, 방영됐다.

김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