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유신책임론으로 떠들썩하다. 총·대선을 실감케 한다. 중심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맏딸이고 12월 대선 유력주자이니 그냥 두지 않는다. 유성우 쏟아지듯 비판이 빗발친다. 박 위원장도 그 빗발을 비켜갈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분들께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져왔다”고 해명했다.
그쯤으로 마무리됐으면 좋겠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경쟁자인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은 “유신독재도 시인하지 않는다”고 반격했다. 이부영 민주통합당 총선 후보는 “독일의 브란트 총리는 반나치스 운동을 했음에도 나치시절 희생자 묘에 가서 사과하고 엎드려 울었다”고 지적했다.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은 “산업화라는 애매한 표현을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야권의 비판론에 김종인 새누리당 비대위원이 ‘우산’을 펼쳐 들었다. 박 위원장에게 유신책임론을 씌우는 것은 일종의 ‘연좌제’라는 논리다.
박 위원장 등 5명의 언사(言辭)를 짚어보면 그 나름의 논리는 분명하다. 사실 박 위원장으로서는 유신체제에 민·형사상 책임은 없다. 연좌제도 오래전에 폐지된 제도다. 짊어질 것이 있다면 정치·도의적 책임 정도일 것이다. ‘산업화, 죄송…’ 표현이 그에 해당한다. 반면 ‘민주화 과정’에서 고통받고 피흘린 사람 입장에선 완전한 해원(解寃)을 원한다. 사죄의 농도차가 뚜렷하다.
적정성과 균형의 문제라고 본다. 우선 민감한 선거철에는 문제 제기 자체를 피했으면 한다. 선거전략화해서는 안 된다. 평시에 역사적 관점에서 미래지향적으로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박정희의 18년 통치는 공과가 병존하기에 악행 일변도의 히틀러 폭정과 비교대상은 아니다. 무역 1조달러의 근간이 된 ‘조국근대화’를 폄하하고 민주화투쟁만 부각하면 형평성을 잃는다. 거꾸로 민주화 없는 배만 부른 사회도 저급하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모두 서로의 공적과 아픔을 먼저 말하는 미덕이 요구된다. 정치인의 그 같은 수준높은 언행이야말로 정치·도의적 책임 이행의 시작이다. 거룩한 말씀도 삿대질하면서 뱉어내면 걸레 같은 말로 들린다.
조민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