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Funny Place] 억세게 펄떡이는 부산의 심장 ‘자갈치시장’

입력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세상이 온통 ‘느림’을 예찬한다. 경쟁의 스피드에 질린 사람들은 이제 여유롭게 살며 행복을 찾자고 캠페인을 벌인다. 그러나 느림의 시대에도 ‘빠름’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부산자갈치 시장이다.

자갈치시장의 물건을 두고 ‘살아있으면 1만원, 죽으면 5천원, 소금 바르면 3천원, 밤에는 거저 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만큼 여기에서는 ‘살아있음’이 최고의 가치다. 자갈치 상인들이 억셀 뿐 아니라 목소리 크기로 정평이 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만큼 펄떡거리는 기운 때문이다. 그들은 눈에 불을 켜고 생선의 신선도를 자랑한다. ‘싱싱함’을 팔아야 나와 가족이 먹고 살 수 있기에 이곳의 어물들은 참 절막하리만치 싱싱하다.

자갈치시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수산물종합시장이자, 동양 최대의 어시장으로 손꼽힌다. ‘자갈치’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1876년 개항 당시 보수천하구에 주먹만한 옥돌로 된 자갈밭에 장이 섰는데, 당시 팔던 어류가 멸치·갈치·꽁치 등 ‘치’자 붙은 생선이 많다 하여 불리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광복 이후에는 연근해 어선들의 수산물 집산지로서의 어항기능, 노점상들의 활어판매 기능이 혼재하는 시장으로 이루어졌다. 이후 6.25 전쟁으로 팔도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가세하며 본격적인 시장으로 성장하게 된다.

■ 질곡의 역사를 함께 한 서민들의 터전

확실히 자갈치시장에는 숱하게 눈에 띄는 어물전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깔려 있다. 그도 그럴 것이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우리의 근현대사와 그 역사를 함께 해온 시장이 아니겠는가. 오랜 역사의 부침을 이 땅의 사람들과 함께해오며 그 뒤 안에 남긴 사연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지.
 
항도 부산은 우리나라 제 2의 대도시이자, 6.25 전쟁 당시 최후의 피란처이기도 하다. 그 때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피란민들은 어시장이 있는 이 해변을 터전 삼아 고단한 삶을 견뎌냈다. 남편을 전쟁터로 보낸 아낙들은 좌판을 펼치고 생선을 팔며 노부모님과 자식을 먹여 살려야 했다. 또 자식들도 부모세대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고 배우며 세상 곳곳에 자기의 터전을 일궜다. 어떤 이들은 부모의 뒤를 이어 시장을 지켜오고도 있다.

어쩌면 이곳의 비릿한 내음이야말로 여기에서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자들의 몸에 간직된 DNA 같은 것이다. 저 너머로 보이는 푸른 바다처럼 자갈치시장은 오늘도 넉넉한 품을 펼쳐 보이며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그려 보인다. 거기, 오가는 흥정이 있고, 평범한 일상이 있고, 질긴 생명의 시를 노래하는 예술도 있다.

■ 자갈치 아지매의 전설

자갈치시장에는 다양한 생선, 해산물, 건어물 외에도 없는 게 없는 생필품 가게가 즐비하고, 싱싱한 먹거리 문화가 있다. 시장을 거닐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하는 외침을 들을 수 있다. 바로, 자갈치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자갈치 아지매’들의 억센 음성이다.

어쩌다 한 두 집을 제외하면 자갈치시장에서 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가 아주머니들이다. 더욱이 노점상의 경우는 예외가 없다. 널빤지 하나에 고무대야를 되는대로 덜렁 얹어놓고 열심히 손님을 부르는 자갈치 아지매는 그 억척스러운 생활력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0년, 20년, 30년 한 자리에서 매서운 바닷바람과 맞서며, 자녀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킨 장한 어머니들도 적지 않다. 옛날의 자갈치 아지매들은 이제 자갈치 할매가 되어 그 딸들에게 넉넉한 인심과 함박웃음을 물려주기도 한다. 모녀가 대를 이어 수십년 시장을 지켜온 자갈치 아지매들은 시장의 상징이자, 부산 어머니들의 다부진 기질을 보여준다.

그러나 억센 부산 여인네들의 웃음 속에는 때로 많은 눈물도 깃들였으리라.

이영희 시인의 「자갈치 애상」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짙푸른 대해를 안고 생존의 진한 내음 / 비늘 털어 바다로 가고픈 욕망이 / 이글거리는 곳 / 거북등 껍질로 어머니의 육신은 / 저자 거리에 젖은 눈물이었다.


■ 펄떡이는 저 생명의 詩장으로!
 
부산시의 자갈치 종합수산관광단지 개발 사업에 따라, 앞으로 이 땅은 훨씬 현대화 된 시장으로 조성되어 갈 것이다. 하지만 어렵고 절박했던 옛 시절부터 우리 곁을 지녀온 서민들의 싱싱한 생명력을 그 후로도 계속 대를 이어갈 것이다. 부산에서 가장 많은 생물(生物)이 모여 있는 곳, 언제나 펄떡이는 생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 그것이 자갈치시장의 본질이다.

물씬한 비린내, 투박하고 정겨운 부산 사투리는 오늘도 여전하다. 그것들이 뒤엉키는 풍경 속으로 가보자. 우리가 자갈치에 간다는 것은 억세게 뛰는 부산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한호(쥬스컴퍼니 대표 /
ceo@comefunn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