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권 은행의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과 이로 인한 붕괴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와 금융권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정부가 은행 붕괴에 대비한 보호 플랜 수립 등 위기탈출 방안을 모색하는 동안 사모·헤지펀드 관계자는 코너에 몰린 은행의 ‘단물’을 빼먹기 위해 실탄을 장전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일(현지시간) 사모펀드와 헤지펀드들이 유럽은행의 자산 매각을 감안해 600억 유로(약 90조원)의 자금을 비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국제회계컨설팅사 PwC의 분석을 인용해 유럽은행이 매각 가능한 비핵심 자산이 2조5000억 유로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PwC는 이 중 올해 500억 유로(액면가 기준)를 포함해 향후 5년간 5000억 유로 수준의 채권이 처분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ECB가 지난해 최장 3년 만기로 수백개 은행에 내준 1조 유로의 대출 상환이 내년 시작되면서 매각 규모는 절정에 이를 전망이다.
사모·헤지펀드들이 가장 군침을 흘리는 대상은 상업용 부동산 담보 채권. 이들은 은행이 급하게 내놓은 매물을 사들여 경기가 회복된 후 이익을 본 뒤 되팔거나, 재조정과정에서 회사가 쓰러지면 집어삼킬 용도로 쓸 것으로 보인다. PwC 산하 유럽 포트폴리오 자문 그룹의 리처드 톰슨 회장은 “은행권의 채권 처분은 수년간 지속되고 향후 인수·합병(M&A)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주민(朱民) 부총재는 지난주 워싱턴 회동에서 IMF의 새로운 분석보고서를 공개하며 “세계 경제가 어느 때보다 훨씬 더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금융위기 발생 시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보다 더 큰 충격이 올 수 있다고 위기 전이 가능성을 강력 경고했다.
은행 부도 불안감이 커지고 이를 노리는 ‘하이에나’가 자본을 꽁꽁 묶어두자 각국 정부는 동요 차단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이 유럽연합(EU) 차원의 은행예금 보증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은행예금자 보호는 각국 정부 차원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그리스 등 위험국에는 정부 보증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이를 방치할 때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로 ‘은행 붕괴 도미노’ 현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EU의 은행보호를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금융권 연계가 밀접한 미국과 영국도 대응에 나섰다. FT는 영국 뱅크 오브 잉글랜드(BOE)와 금융청(FSA),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은행 붕괴 공동 대비책 마련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유사시 당국 주도로 주주와 채권단이 손해를 감수하도록 강제해 핵심 사업이 그대로 운용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독일에 이어 프랑스의 로랑 파비위스 외무장관은 라디오 방송에서 “그리스가 유로존 잔류를 원한다면 투표로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며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정진수 기자
자산매각 대비 90조 비축
각국 정부선 “불안감 차단”
EU차원 예금보증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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