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씨는 초보 농민이다. 지난해 도시생활을 접고 아내, 두 딸과 함께 충북 옥천으로 내려왔다. 아직은 농사일에 서툴지만 깻잎을 가꾸며 억대 부농의 꿈을 키운다. 통장에 차곡차곡 돈이 쌓일 때마다 그의 희망도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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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탈북자 귀농1호 원치환씨가 30일 충북 옥천 자신의 비닐하우스에서 귀농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깻잎을 따던 그가 애써 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의 남한 안착 과정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는 올해로 탈북 10년째를 맞는다. 북한에선 초급당비서로 그런대로 안락한 지위를 누렸던 그다. 김일성정치종합대학을 나올 정도로 나름의 엘리트 코스도 밟았다. 결국 과거 출신 성분이 들통 나 그는 목숨을 담보한 탈북을 결행했다. 천신만고 끝에 자유를 찾아왔지만 남녘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식품회사와 골프장 등에서 허드렛일도 했다. 가족 모두 취업전선에서 열심히 뛰었지만 이들을 보는 주위의 눈길은 차갑기만 했다. 탈북자 출신이란 딱지가 따라다녔다. 월급을 주더라도 남쪽 사람보다 적었고, 승진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우린 외국인이나 다를 바 없었어요. 북쪽에서 온 이방인인 셈이죠.”
원씨는 삶의 반전을 생각했다. 농촌에서 새 삶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동토의 땅을 탈출하는 비장한 각오로 인생 3모작을 준비한다면 안 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농사일엔 젬병이었다. 북한에서도 호미자루 한번 잡아본 일이 없었다.
“가족들이 모두 반대했죠. 북한에서 비참한 농촌 생활을 많이 봐왔거든요.”
그의 끈질긴 설득에 가족들의 반대도 누그러졌다. 곧바로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영농교육 프로그램에 이름을 올렸다. 주말에는 강원도와 전남 여수, 경남 거제 등지를 메주 밟듯 돌아다녔다. 그런 노력 끝에 지난해 6월 정착한 곳이 산 좋고 물 좋은 옥천 땅이었다. 그는 요즘 깻잎 농사로 매월 7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탈북 관련 단체에서 귀농을 꿈꾸는 다른 탈북자들에게 모범 사례로 소개할 정도로 제법 이름도 알려졌다.
“저는 농촌에서 희망을 봅니다. 농사는 땀을 흘린 만큼 반드시 돌려주거든요.”
부농의 꿈에 한발 다가선 그의 웃음이 넉넉하게 다가왔다.
옥천=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