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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또 역사 왜곡 '꼼수'…만리장성 갑절 늘린 이유

입력 : 2012-06-07 10:36:03
수정 : 2012-06-07 10: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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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에서 요동반도까지 2만 1196㎞로 발표
다민족 국가론 강화로 내부 안정 도모 의도도
중국 정부가 만리장성의 길이 늘이기를 다시 노골화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요동반도와 만주, 연해주를 무대로 한 우리 고대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의 일환이다. 중국의 발표대로면 만리장성은 불과 3년사이 고무줄처럼 늘어나 ‘오만리장성’으로 이름을 바꿔야 할 판이다.

중국 정부와 학계는 그동안 끊임없이 만리장성을 동·서로 확장하는 데 주력해왔다. 중국은 2006년 국무원 명의로 ‘(만리)장성 보호조례’를 제정하면서 만리장성 보호와 연구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국가문물국과 국가측정국은 2007년부터 진한(秦漢) 시대와 기타 시대의 만리장성 자원 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사업에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모두 5억위안(약 925억원)을 투입했다고 광명일보는 전했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장성조사 및 보호를 국가사업으로 추진하면서 노골적인 역사왜곡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업은 요동 뿐 아니라 만주까지 원래 중국땅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만리장성과는 구별되는 유적들까지 대거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명나라 때부터 만리장성은 서쪽 고비사막에 위치한 자위관(嘉浴關)에서 동쪽 끝 산해관(山海關)까지 6300여㎞라는 게 정설이었다. 중국은 2009년 랴오닝성 단둥(丹東)의 고구려성, 박작성(泊灼城·중국명 후산성)이 만리장성의 일부로 확인됐다면서 만리장성의 길이가 기존까지 알려진 2500㎞보다 더 긴 8851.8㎞로 확인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해 국가문물국은 박작성에 ‘만리장성 동단기점(萬里長城 東端 起點)’이라는 대형 표지판 개막식을 열었고 박작성이 고구려 유적지라는 기존의 관광 안내문도 사라졌다. 박작성은 요동반도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방어하는 성으로, 고구려와 당(唐)의 전쟁에서 처음 등장하며 고구려 유적지로 판명된 바 있다. 이후에도 중국은 고구려의 발원지인 백두산 근처 지린성 퉁화(通化)현에서 진한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만리장성 유적이 발굴됐다고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현재 12·5계획(2011∼2015년)기간에도 만리장성 보호종합관리를 시행할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당국은 만리장성보호 및 발굴과 관련한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장성관리 소홀때 처벌도 가능토록 했다. 고증이 어려운 만리장성의 돌과 흙을 발굴, 보존하는 과정에서 역사왜곡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구려 박작성도 만리장성 포함 중국이 명나라 축성 공법을 이용해 복원한 박작성(중국명 후산성). 중국은 2009년 박작성이 만리장성 일부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작성은 고구려가 요동반도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방어하는데 활용된 성으로 고구려 유적지로 판명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신장위구르족자치구까지 만리장성에 포함된 점에 주목해 중국이 다민족 국가론을 강화해 내부 안정을 다지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신장자치구는 이슬람 교도인 위구르인이 독립을 줄기차게 주장해 폭력 사태와 각종 테러, 충돌이 끊이지 않는 민족분쟁의 화약고로 꼽힌다.

만리장성이라는 상징을 활용해 민족 간 이질감을 봉합하자는 계산도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올 가을 권력교체를 앞둔 중국 당국으로서는 신장자치구와 티베트자치구의 안정적 관리가 가장 시급한 현안일 수밖에 없다.

당장의 민감성에서 신장자치구 정도에 미치지 않지만 지린성과 헤이룽장성도 중국 당국이 봤을 때 장기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는 지역이다. 고구려와 발해의 발원지이기도 한 이곳은 역대로 한국과 중국의 역사적 경험이 중첩된 곳이라는 점에서 양쪽이 서로 ‘역사상의 주인’임을 주장하면서 마찰을 빚을 소지가 크다는 관측이다.

베이징=주춘렬특파원 clj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