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는 최근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징계 수위 등을 결정하는 ‘학교폭력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었다. 학폭위는 A양과 말다툼을 벌이며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B양 등 4명에게 징계를 내렸다. 이들은 가담 정도에 관계 없이 모두 ‘서면사과’ 및 ‘사회봉사 3일’ 등의 조치를 받았고 이 사항은 학교생활기록부에 고스란히 오르게 됐다. 하지만 B양 등은 “A가 실수로 친구 C의 안경을 밟아 파손했는데 사과도 하지 않고 돈으로 해결해려해 화가났다”며 “C와 함께 몰려가 사과를 받으려 한 것은 잘못했지만 학교가 우리를 일방적으로 죄인취급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예방대책이 학교 현장에서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사소한 욕설도 학교폭력’으로 분류되면서 시도 때도 없이 학폭위가 소집된다. 경미한 학폭위 징계사항도 학생부에 기재되면서 고교 진학과 대학 입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9일 교육계에 따르면 정부의 학교폭력 종합대책에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처벌 위주의 제도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B양 아버지는 “학교폭력은 약한 아이를 이유 없이 괴롭힐 때 성립되는 것이 아니냐”며 “친구를 위해 사과를 받으려다 말다툼을 벌였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돼 학생부에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됐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학교 측은 “법대로 했을 뿐”이라며 “억울하면 행정심판을 청구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B양 아버지는 현재 관할 교육청을 상대로 행정심판 청구를 준비 중이다.
대입을 앞둔 고교에서의 부작용은 더욱 크다.
경기 성남의 한 고교에서는 여학생이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전 남자친구를 학폭위에 신고해 전학을 요구했다. 서울시내 한 고교에서는 일진 학생에게 괴롭힘을 당한 ‘모범생’이 참다 못해 주먹을 휘둘렀다가 징계를 받았다.
학부모 중에는 이미 해결된 사건에 대해서도 “교사가 학교폭력을 은폐하려 했다”고 주장하는 등 막무가내로 학폭위 개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검찰이 지난 2월 학교폭력을 방관한 중학교 교사를 직무유기 혐의로 입건하면서 학교 측도 별다른 중재 노력 없이 학폭위부터 소집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학폭위 개최 건수가 2건에 그쳤던 경기 화성시 한 고교의 경우 올 들어서만 벌써 7건에 달했다.
성남지역 학교운영위원회협의회 이경진 회장은 “대입을 앞둔 고교생의 학생부에 경미한 사안까지 기재하는 것은 치명적”이라며 “가벼운 사안은 중재를 통해 해결하고 학생부 기재는 피할 수 있도록 학폭위에 재량권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대학에서는 학생부 기재 사항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개선 여부도 살피기 때문에 입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사소한 욕설도 학교폭력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기까지의 과도기적 현상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