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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필로우맨> 연출가 변정주 ©정다훈 기자 |
“도구적 인간, 언어적 인간 등 여러 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인간의 고유한 특성은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기승전결이 있잖아요. 일례로 천지창조 및 종말에 대한 이야기만 봐도 처음과 끝이 있어요.
저희 작품에도 그런 대사가 나오는데 ‘사람은 죽지만 이야기는 남는다’란 말이 있어요. 어떤 이야기든 재미있는 (내용)살이 붙거나, 혹은 삭제되며 기이한 생명체처럼 자라나는 듯 합니다. ”
중요한 건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말하는 그. 그가 말하는 재미는 뭘까.
“우리가 잘 아는 빨간 휴지, 파란 휴지 이야기가 있잖아요. 따지고 보면 작자미상의 이야기에요. 이 각각의 휴지가 어떤 의미인지는 학자들이 하는 일이죠. 뭐 빨간 휴지는 ‘피’이고 파란 휴지는 ‘피가 빠져나간 상태’이다 식의 해석 말이에요. 하지만 인간은 여기서 상상력을 자극받고 집중하게 되요. 그렇게 되면 뭔가 보이고 재미를 알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무대에서의 재미’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무대에서 재미있는 건 배우가 바지를 내리고 똥을 싸는 거죠(웃음). 물론 장난식으로 그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무대에서의 재미’를 분류해서 말씀드리자면,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편견이 깨지는 재미’가 있겠죠. 더 나아가 ‘시대를 볼 수 있는 재미’ ‘말(언어)가 가지는 재미’ 등 여러 가지가 있겠내요. ”
■ 이야기꾼 변정주, ‘필로우맨’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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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필로우맨> 연출가 변정주 ©정다훈 기자 |
오는 8월11일부터 두산 아트센터 Space 111에서 막이 오르는 연극 ‘필로우맨’은 표면적으로 잔혹한 아동 살인 사건에 얽힌 작가와 지적장애를 가진 형, 그리고 그들을 취조하는 형사들의 진실공방을 그린 추리 스릴러다. 어둡고 잔인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극중 작가 카투리안이 쓴 동명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선 현재 고통을 받고 있어 불행한 미래를 살아가게 될 아이들을 찾아가 자살을 도와주는 ‘베개맨’이 나온다. 이렇듯 살인사건을 취조하는 직렬식 이야기와 주인공이 끝끝내 지켜나가고자 하는 이야기들의 병렬식 투입이 공포와 긴장감을 더하는 게 특징이다.
21세기형 천재 예술가로 지칭되는 작가 마틴 맥도너의 ‘필로우맨’은 2007년 초연, 배우 최민식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5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박근형 연출이 작업한 초연을 보지 못한 변 연출은 “그때 작품과 다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초연을 보지 못해 그때 분위기나 느낌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초연과 비교자체를 할 수가 없내요. 제작팀이 영상물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직까지 저에게 보여주진 않았어요. 제 연출 작업에 제약으로 다가올 것 같아 그런 듯 해요. 큰 변화라면 LG아트센터(초연무대)과 다르게 소극장 무대로 오면서 보다 호흡이 긴밀해질 것 같습니다. 희곡 속 인물이 7명인데 이번 연극에선 4명의 배우만 나옵니다. 배우 숫자는 줄이고 다른 인물이 나와야 할 장면은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섞은 강렬한 영상으로 대체할 예정이에요.”
변 연출가는 연극 ‘필로우맨’은 “이야기하기에 대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필로우맨’은 폭력의 역사 혹은 과거의 트라우마에 대한 작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은 왜 이야기에 집착하고 흥미를 보일까? 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스토리텔링에 관한 지점이 매력적이죠. 어디까지가 이야기이고 현실인가? 이게 작가와 형의 이야기인지, 극중 이야기 속의 ‘필로우맨’인지가 뒤엉켜 있어요. 픽션과 팩트 세계가 혼재 돼 있는 거죠. 이런 방식을 통해 관객은 극 중 현실세계와 상상의 세계가 허물어져 하나가 되고, 동시에 현실과 연극의 경계도 허물어지는 특별한 경험이 일어나게 됩니다.”
■ 변 씨, 자신을 둘러 싼 세상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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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필로우맨> 연출가 변정주 ©정다훈 기자 |
변정주 연출가는 함께 작업하는 배우 및 스텝들에게 자신을 부를 땐 ‘변씨, 혹은 J’로 부르라고 했다고 했다. ‘연출님’이란 호칭은 왠지 벽을 만드는 것 같아 싫다는 게 이유다. 그래서였을까. 변씨가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변씨는 “‘필로우맨’은 2012년 현재 대한민국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고 전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본 연극 ‘전명출 평전’처럼 통쾌함이나 풍자가 전면에 드러난 작품은 아니에요. 오히려 추상적이고 근본적인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잡혀가 고문 받거나 공권력이 폭력을 휘두르는 황당한 현실도 비추고 있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야기보다 황당할 때가 많잖아요. 그런 점에서 현재 대한민국을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변씨는 “현실이 너무 연극 같아서 현실을 연극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최근 공지영 작가가 ‘의자놀이’란 책을 출간하면서 ‘신문이 소설을 써서 제가 (기사가 담긴)책을 써냈다.’는 말을 했다고 하죠. 전 그 말을 ‘연극’에 차용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필로우맨’ 속 주인공도 작가이구요. 원작 배경은 정확히 어디인지 표기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장소와 배경을 한국사회로 설정했어요. 결국 작품 속 중요한 축인 예술가로 통칭되는 작가와 권력가의 대립을 읽을 수 있을 듯 합니다. ”
작가와 권력자가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작가는 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픽션을 끌어 들이는 거잖아요. 반면 권력자는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팩트를 조장한다고 볼 수 있어요. 오히려 결론을 만들어놓고 팩트를 끼워 맞추는 식이죠. 이게 은유적으로 대립하는 지점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다만 저희 작품은 직접적인 은유가 나오지는 않는 게 여타의 사회성 가득한 연극과 다른 지점입니다. ”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구획되지 않는 다양한 주제를 담아낸 연극 ‘필로우맨’을 통해 변정주는 ‘이야기’와 ‘현실’의 역학관계,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과 ‘이야기’를 취하는 관객의 동시대성과 소통에 주목했다.
“전 세계 권력들이 비슷한 것 같아요. 어떤 정치적 사건을 해결하려고 할 때 희생양이 되는 게 아티스트입니다. 범인들을 처형하기 보다는 그런 이야기를 쓴 작가를 처형 하는게 더 강하고 사회적 파급력이 크다고 보는 거죠.”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학창시절 사회학도가 되고 싶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싶어 신문을 빠지지 않고 보는 편입니다. 그런데 고교시절 암기과목인 역사 및 사회는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학교 때 눈이 떠져 다시 공부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역사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고 여겨지내요. 물론 학교에서 배우는 건 ‘국사’이고 나라가 만든 역사였지만 말이죠. ”
■ 연출가 J, 배우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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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필로우맨> 연출가 변정주 ©정다훈 기자 |
“어찌보면 이 작품이 참 복잡하고 센 이야기거든요. 대본을 받고 몇몇 배우들이 그려졌어요. 그래서 떠 오른 배우들에게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허락해줘서 감사하죠. 정말 실력 있는 배우들이란 건 자신합니다. 연극작업이 쉽지 않지만 정말 재미있어요. 배우들도 멋 모르고 읽었던 리딩과는 다르게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지고 넓어져 내공이 쌓이고 있구요. 이해한 것과 다르게 표현하지 못할 땐 그 속엔 나름 고충도 있지만 말이죠.”
“제가 하는 유일한 일이 바로 이야기를 만드는 겁니다.”라며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주인공 카투리안 역엔 배우 김준원이 캐스팅됐다. 변 연출가와는 ‘우투리’, ‘날 보러와요’등으로 인연을 맺었다. 대사 분량이 만만치 않은 역할인데 배우가 힘들진 않았을지 걱정이 앞섰다.
“김준원 배우는 참 폭이 넓어요. ‘날 보러와요’ 속 마지막 심문 장면에서는 A4 한페이 반 분량의 독백 씬이 나오는데, 당시 배우가 그 장면을 소화하는데 약 보름이 걸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번엔 3-4페이지 분량의 독백이 5개 정도 있어요. 처음엔 산술적으로 답이 안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곧 풀리는 순간이 있을 거다’고 격려했죠. 연극이 물리학도 아니고 수학도 아니잖아요. 지금은 안정되게 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
이어서 연출가 J는 ‘배우는 예수님과 비슷하다’란 발언을 했다.
“연출가는 보고만 있으면 되거든요. 반면 배우는 자신을 혹사시켜야 행복해진다는 점에서 예수님 같아요. 아! 저도 배우가 하고 싶어요. 이런 멘트는 꼭 인터뷰에 써주세요.(웃음)”
연출보다는 배우에 대한 신념이 강해서 그런건가? 라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발랄한 배우 지망생 이미지가 그려졌으니 말이다.
“1999년도에 이송일 감독의 단편영화 속 주연 배우로 나온 적이 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덤빈 거죠. 얼덜결에 배우 길에 들어섰다 바로 접은 거죠. 그러다 1~2년 전부터 다시 무대에 서고 싶어졌어요. 연극무대 오르는 건 아직 무섭고 단편영화에 작은 역으로라도 출연하고 싶어요. 배우는 직접 박수를 받은 존재잖아요. 그게 부러워졌기도 했구요. 영화 배우는 여행을 많이 가잖아요. 작업의 연장선이겠지만 전국 방방곡곡으로 여행갈 수 있다는 게 부러웠습니다. ”
‘잿밥에만 관심있는 거 아닌가?’란 의문이 떠올라 대 놓고 물어봤다.
“우리가 제사 지내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잿밥 먹기 위해서인 거 아닌가요(웃음)”
연출가 J는 여배우에 무한 애정을 주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처음엔 남자라면 흔히 보이게 되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으로만 짐작했는데, 그 것보다는 다방면의 의미가 있는 듯 했다. 오소연 배우가 대구 뮤지컬 페스티벌 시상식에서 언급했던 “여배우에게 무한 애정을 주는 연출님 감사해요”가 온 몸으로 이해된 날이기도 했다.
“모든 인간에겐 매력이 보여야 하는 거 잖아요. 모름지기 예술가라면 동기부여가 되야 작업을 잘 할 수 있는거구요. 그게 남자배우보다는 여자배우가 잘 된다는 점이 의미가 있는 거죠. 그런데 ‘필로우맨’은 여자 배우가 한 명도 나오지 않습니다. 초반엔 여배우 없는 연극을 과연 할 수 있을까? 고민 아닌 고민을 했습니다. (웃음) 그러던 중 저 뿐 아니라 남자 배우들이 의기투합해 매주 하루를 여배우 데이(여배우 모셔와 회식)로 만들었어요. 그 날을 위해 열심히 연습을 하는 거죠. ”
■ 관객 J, 연극을 이야기하다
‘필로우맨’은 두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약 한 달 간 관객들과 만난다. 객석이 꽉 찬다 해도 4,000명 관객만 연극을 볼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소극장 연극이란 게 공연 마니아라면 모를까, 연예인이 나오지 않는 이상 일반인들의 전폭적 관심을 끌긴 쉽지 않다.
이에 대해 (연출가 이전)관객 J로 존재하는 변씨는 “한달 간 매진을 기록해도 조승우가 대극장에서 2회차 공연으로 끌어들이는 관객 숫자에 불과하다. ”고 의미 심장한 멘트를 날렸다.
“한달 동안 4명의 배우가 매번 무대에 섭니다. 이들이 뮤지컬 배우 한 명이 단 2회만에 4000명에게 보여주는 것 보다 (관객에게)못 보여준다면 정말 사회적 낭비 아닐까요. 정말 실력자 연극배우들입니다. 이런 실력자들이 계속 연극무대에 서고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관객분들이 연극을 많이 봐줘야 합니다. 주변을 보면 생계를 위해 TV에 출연하거나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해서 연극무대에 자주 서지 못하는 연극배우들도 많습니다. 단 100명을 위해 하루를 헌신하는 대단한 배우들을 보러와주세요.”
관객 J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처음 보고 난 여동생이 했던 “수십만명이 보는 TV나 영화와 다르게 단지 30명 관객을 위해 헌신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는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전하기도 했다.
시대와 소통하는 연출가 변정주는 “음악성은 좋지만 미술 감각은 떨어지는 연출이다”고 본인 스스로를 평가했다. 이어 “여신동 무대 디자이너가 시각적 감각에 센스를 더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 멘트에선 관객과의 소통을 간절히 원하고 있음이 읽혀졌다. “‘필로우맨’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및 우리가 이런 시대를 살아가게 된 근원에 대해서 소통하려고 하는 작업이에요. 제작팀에게도 말했어요. 관객 10명만 모이면 관객과의 대화에 자진해서 나가겠다고요.“
공연칼럼니스트 정다훈(ekgns44@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