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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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적을 이겨 즐겁다!'…더비전, 그 이상의 한일전

질긴 인연이다. 극적이기까지 하다. 한국과 일본 올림픽축구대표팀이 축구의 본고장 영국에서 13번째 '한일전'을 펼쳤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올림픽대표팀은 11일 오전 3시45분(한국시간) 카디프의 밀레니엄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런던올림픽 남자 축구 3·4위전에서 일본을 만나 2-0으로 승리했다.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노리던 한국이 벼랑 끝에서 만난 상대는 일본이었다. 승승장구하던 양팀은 약속이나 한 듯 준결승에서 나란히 대회 첫 패배를 당하며 3·4위전으로 떨어졌다.

인연인지 악연인지 더 없이 완벽한 '빅매치'가 성사됐다. 단판 승부에 많은 것들이 걸려 있었다.

일본은 1968멕시코시티올림픽 이후 44년 만에 2번째 올림픽 '동메달'을 노렸다. 조별예선과 토너먼트에서의 성적(3승1무1패)은 한국(2승2무1패)보다 좋았다. 'Again 1968'이 눈앞에 와있었다.

역대 최강의 멤버라고 평가받았던 한국은 올림픽 첫 메달을 목표로 삼고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사상 첫 4강 진출을 이뤄냈다. 멈출 수 없었다. 병역 문제도 걸려있었다. 금메달 이상의 가치를 지닌 동메달이 필요했다.

한국의 절심함이 더 컸다. 박주영(아스날)과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의 연속골로 양국 올림픽대표팀 간 13번째 맞대결 승자는 한국이 됐다. 각본 없는 드라마 '한일전'은 이렇게 또 한 번 막을 내렸다.

연고지를 같이하는 클럽들 간의 대결을 '더비전'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엘 클라시코 더비(FC바르셀로나vs레알마드리드), 스코틀랜드의 올드 팜 더비(셀틱vs레인저스), 이탈리아의 밀란 더비(AC밀란vs인터밀란) 등이 대표적인 예다.

더비전은 치열하다. 오랜 역사와 전통이 축구공 하나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축구팬들에게 더비전은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게 '한일전'은 더비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축구에 대한 관심, 성별, 나이를 떠나 한일전을 온 국민을 열광시킨다.

'숙적'과의 대결은 껄끄럽지만 축구팬들에게 한일전은 최고의 이벤트다. 일단 만나면 이겨야 한다. 절실한 만큼 스포츠로서의 매력도 크다.

한일전이 공식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54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스위스월드컵예선전 때부터다. 당시 한국은 일본을 5-1로 대파하며 6·25전쟁 이후 시름에 빠져있던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겼다.

이후 58년 동안 한국은 일본과 75차례 만나 40승22무13패(국가대표 기준)를 기록하고 있다. 압도적인 우세다.

그 사이 잊을 수 없는 명승부도 연출됐다. 최고는 역시 '도쿄대첩'이다.

1997년 9월28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1998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열렸다. 당시 0-1로 뒤지고 있던 한국은 서정원이 헤딩 동점골에 이어 수비수 이민성이 그림같은 왼발 중거리슛을 터뜨리며 극적인 대역전승을 거뒀다.

한국이 우위를 지켜왔던 국가대표간 한일전은 2000년 이후 백중지세를 이루고 있다. 총 13번의 대결에서 한국이 4승6무3패로 근소하게 앞서며 진정한 라이벌전 양상을 띠고 있다.

올림픽대표팀 간 역대 전적은 5승4무4패로 한국이 1경기 앞서고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첫 공식 경기를 치렀고 역시 한국이 1-0으로 마수걸이 승을 챙겼다.

최근 분위기는 일본이 좋았다. 한국은 2003년 가진 친선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둔 이후 5경기(3무2패) 동안 승리가 없다.

하지만 가장 마지막에 치러진 런던올림픽 축구 3·4위전에서 한국이 다시 1승을 챙기며 한 발 앞서게 됐다.

전적은 비슷하지만 실속은 한국이 챙겼다. 13번의 맞대결 가운데 일본이 챙긴 4승은 모두 친선경기에서 나왔다.

반면 한국이 따낸 5번의 승리 중 4번은 의미가 있다. 1992바르셀로나올림픽 최종예선(1-0), 호주 4개국대회(1-0), 1996애틀랜타올림픽 최종예선(2-1), 2012런던올림픽 3·4위전(2-0)까지 중요한 대결에서는 한국의 승률이 높다.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은 국제무대에서 나란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자연스레 한일전의 기회도 늘고 있다. '숙적'과의 만남이지만 싫지만은 않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라이벌과의 대결에 축구팬들은 즐겁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