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부 시위에 이은 내전이 18개월간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에서 희망을 잃은 난민의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학살은 계속되는데 러시아·중국과 서방국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 다마스쿠스, 알레포, 홈스 등 시리아 주요 도시에서는 하루도 총성이 끊일 날이 없다. 정부군과 시민군 간 치열한 교전으로 지금까지 최소 2만9000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생존 위해 삶의 터전 버리는 이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 8월 한달에만 10만명이 시리아를 탈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이후 최대 규모다. 8월 초에만 해도 한주에 500명이던 이라크행 난민이 마지막주에는 하루 500명으로 늘어났다. UNHCR 등록과 등록대기 기준으로 총 난민수는 25만명으로 추산되지만 비공식 난민의 수는 30만명을 훌쩍 뛰어넘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시리아 국내 난민도 2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반정부 시위 발발 초기에만 해도 미미하던 난민 숫자가 교전이 격화하고 국제 사회 지원이 요원하자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지난 8월에만 주요 도시에서 5000명을 넘어섰다.
UNHCR의 멜리사 플레밍 수석 대변인은 “8월에만 10만여명이 탈출하는 등 이동과 피난을 요청한 사람이 급증했다”며 “시리아에서 매우 위험한 폭력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터키와 요르단 국경 인근에는 각각 8만여명의 시리아 난민이 둥지를 틀었다. 6만7000명은 레바논에 자리 잡았고 이라크에도 2만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촌이 형성됐다.
수만명이 몰려 있는 난민촌이지만 기본 생필품은 물론 식료품도 넉넉지 않고 시설도 열악한 상태다. 지난달에는 요르단의 한 난민촌에서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져 수십명이 다치기도 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1억8000만달러(약 2000억원)의 구호자금을 국제사회에 요청했지만 지금까지 절반밖에 걷지 못했다”고 어려움을 호소하며 각국이 시리아 지원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액수는 올 연말 난민이 18만명에 이른다는 전제로 추산한 것이다. 난민이 이미 25만명을 넘은 상황에서 필요한 구호자금은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터키와 요르단은 내전이 격화하면 난민의 수가 연말까지 각각 15만명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시리아 시민군과 난민 지원을 위해 5400만달러(약 60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고 캐나다도 요르단에 위치한 난민캠프 등에 1000만달러를 제공키로 했다. 중국은 470만달러 상당의 물자를 지원한다고 지난달 밝힌 바 있다.
◆주변국은 난민 유입에 ‘속앓이’
시리아 난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주변국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난민캠프를 설치했지만 자국의 정치·경제에 끼칠 영향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난민을 직접적으로 거부하지 못하지만 이들이 잠재적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난민수가 8만명에 달하는 터키는 정치·종교적인 이유로 시리아 난민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시리아 내 쿠르드족이 터키 동부 도시 4곳을 장악하면서 가뜩이나 신경쓰이는 쿠르드족의 자치 요구가 커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유럽국가는 불법 이주를 우려하고 있다. 특히 터키와 국경을 맞댄 그리스는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터라 더 민감하다. 그리스는 지난 7월 터키와의 국경선 경비 병력을 4배로 증강했다. 유럽 내의 불법 이주 ‘구멍’이던 그리스가 실업률이 25%에 육박하면서 밀입국자와 난민이 밀려들 경우 부작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남유럽에서 물리적으로 거리가 먼 스웨덴에서도 최근 시리아 난민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스웨덴은 갑작스러운 난민 증가에 관광용 호스텔과 산장까지 임시 수용소로 바꿨다.
스웨덴 정부는 내년까지 1만7000명의 난민이 유입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독일도 올해 상반기 2000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였다. 이는 지난해 전체 시리아 난민수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급작스러운 유입으로 난민 수용에 비교적 관대한 이들 국가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목숨을 건 탈출’이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달 초엔 100여명의 밀입국자를 태운 어선이 터키 인근 해안에서 암초에 부딪혀 60여명이 숨졌다. 이들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밀입국하려는 사람들로, 시리아 난민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진수 기자 yamyam1980@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