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제도·북방영토(러시아명 쿠릴열도) 등 현재 영토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곳 모두 섬 지형인 까닭에 군사충돌 시 점령·탈환 상륙작전을 주도할 해병대의 필요성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일각에선 이러한 전력 강화가 동북아의 군비증강을 촉발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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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육상자위대와 미 해병대원들이 지난 22일 미국령 괌 인근의 섬에서 가상의 적에 뺏긴 섬을 탈환하기 위해 고무보트를 타고 해안가에 상륙하고 있다. |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제정된 ‘평화헌법’에 따라 정식군대를 갖지 못한 채 무장경찰 수준의 ‘자위대’를 보유한 일본에는 공식적으로 해병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침투와 상륙을 통해 적진 파괴를 우선하는 해병대의 공격적 성향이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해석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최근 주변국들과 섬 영유권을 놓고 다툼이 빚어지자 미 해병대와의 연합작전이라는 미명하에 은근슬쩍 해병대 운영에 나섰다. 일본 방위성은 지난 22일 이례적으로 언론에 미국령 괌 주변 섬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육상자위대와 미 해병대의 ‘도서방위 합동군사훈련’ 현장을 공개했다.
이 훈련은 수륙강습함을 ‘가상의 적’에게 빼앗긴 섬 근해에 정박시킨 뒤 육상자위대 서부방면대 소속 장병 30명과 오키나와 주둔 미 제31해병대원 30명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6대의 고무보트를 타고 해변에 상륙해 적을 소탕하는 시나리오로 진행됐다.
일본 방위성에 따르면 육상자위대와 미 해병대는 지난달 21일부터 37일간의 일정으로 괌 주변의 크고 작은 여러 개 섬들을 돌며 수륙강습함과 헬리콥터, 고무보트 등을 활용해 섬을 탈환하는 훈련을 반복하고 있다. 자위대 관계자는 “섬마다 독특한 지형으로 다양한 전투 환경을 학습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비공개로 진행됐던 이 훈련을 방위성이 돌연 언론에 공개한 것은 최근 중국과의 센카쿠 충돌로 불안해하는 일본 국민에게 자위대의 존재감을 어필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됐다.
자위대 보도관은 이번 훈련에 대해 “특정한 국가를 상정한 훈련이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으나 TBS방송 보도 등에서는 시청자에게 센카쿠와 독도를 염두에 둔 상륙훈련이라고 설명했다.
방위성은 내년 예산 요구안에 4대의 상륙용장갑차(AAV7) 조달 경비로 약 30억엔(430억원)을 포함시키는 등 자위대의 해병 작전능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정치권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진행되는 제1야당 자민당의 총재경선에서 유력한 1위 후보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정조회장은 “일본처럼 도서가 많은 나라에 해병대가 없는 것은 이상하다”며 해병대 창설을 부르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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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동중국해에서 실시된 섬 탈환 훈련에 참가한 중국 해군 육전대(해병대) 대원들이 상륙함에서 고무보트를 끌어내면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중국망 |
중국 인민해방군도 이달 중순부터 난징(南京), 광저우(廣州), 청두(成都), 지난(濟南) 등 4대 군구가 나서 도서 탈환 훈련에 열성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2일에는 센카쿠제도가 있는 동중국해에 인접한 푸젠성에서 열린 상륙훈련이 중국중앙(CC)TV의 전파를 타기도 했다. 이 훈련은 수륙양용장갑차 수십대가 참여한 가운데 중국의 해군 육전대(해병대)가 가상 적의 공격을 뚫고 해변에 상륙해 섬을 되찾는다는 내용으로 전개됐다.
센카쿠 해역을 담당하는 동해함대는 주요 전투함정과 잠수함, 전투기, 헬리콥터, 지상 지원 부대 등을 동원해 이 상륙작전을 측면에서 지원했다.
상부의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 센카쿠를 군사적으로 점령할 수 있다는 중국군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무력시위로 해석됐다.
중국군은 남중국해 영토갈등이 한창이던 지난 7월 초에도 최신형 반항모 미사일 ‘잉지(鷹擊)62’ 발사 훈련과 함께 해군 육전대의 종합실탄훈련 사진을 공개하며 미국과 필리핀, 베트남 등에 강력한 경고 신호를 보낸 바 있다.
◆중·일에 비해 해병대 활용에 조심스러운 한국
한국은 지난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직후 해병대 상륙작전을 포함한 대규모 독도 방어훈련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었다. 독도가 가상의 적에게 점령당한 상황에서 해병대원 30여명이 치누크(CH-47) 헬기를 타고 독도에 침투해 섬을 탈환하는 것이 훈련의 하이라이트였다.
하지만 일본과의 외교마찰 확대를 우려한 청와대가 이달 초 해병대 상륙작전을 돌연 취소하고 해양경찰 위주로 훈련 골격을 바꿔 실시했다.
정부당국자는 이에 대해 “해병대는 독도에 외국군이 상륙하는 것을 가정해 훈련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외국 민간인이 독도에 불법 상륙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고 해병대를 독도에 투입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일 관계에 정통한 한 고위 외교관은 “전후 사정이야 어쨌든 정부가 조용한 외교에서 탈피하겠다며 한번 칼(해병대 훈련)을 뽑은 만큼 공언했던 대로 그것을 사용해야지 그냥 칼집에 집어넣는 것은 일본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로 지난해 해병대 주도의 서북도서방위사령부가 창설된 데 이어 해병대가 영토 분쟁 지역으로 영역을 넓히는 등 쓰임새가 더욱 확장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김동진 기자 bluewins@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