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는 내외의 견제와 반대 속에서 끈질기게 추진한 집요한 정치적 기획이었습니다.”
한글 창제가 반대파의 방해를 피해 비밀리에 추진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정윤재(59·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5일 “세종대왕이 대체로 재위 14년(1432년) 이후에 훈민정음 창제를 결심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는 비밀리에 집요하게 추진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이런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논문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발간의 정치과정 분석’을 9일 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제4회 세종학학술회의에서 발표한다.
정 교수에 따르면 세종대왕은 재위 26년(1444년) 12월 한글 창제를 완료했다. 그러나 실록에는 구체적 일자가 없고, 막연히 ‘시월(是月)’이라고만 적혀 있다. 정 교수는 “정확한 일자나 전후 배경이 실록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을 단순한 실수나 착오로 보긴 어렵다”면서 “세종대왕의 의도적인 숨김일 수도 있고, 당시 글쓰기의 권력을 쥐고 활동했던 사관들의 공개되지 않은 의도가 그대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정 교수는 또 세종대왕이 최만리 등 한글 창제를 반대한 신하들에게 ‘설득과 배제의 전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고 분석했다. 조선시대에 신하가 임금을 비판한 것은 ‘중죄’에 해당할 수 있었으나 최만리는 하룻밤 구류, 정창손·김문 등은 파면 또는 벌금이라는 가벼운 벌을 받았다.
정 교수는 “훈민정음 반포와 발간 모두 평온한 가운데 준비된 것이 아니라 ‘권력 몸체들’ 사이의 긴장과 대립, 그리고 심각한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성취된 정치적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정아람 기자 arbam@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