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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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중독된 일그러진 사회

전아리 ‘주인님, 나의 주인님’
“경험과 식견을 넓혀 일상의 무료함을 가볍게 뛰어넘는 작가가 되겠다.”

소설가 전아리(26·사진)씨가 2008년 장편소설 ‘직녀의 일기장’으로 제2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밝힌 소감이다. 수상 당시 스무 살을 갓 넘긴 풋풋한 신인이었던 전씨는 어느덧 4권의 장편을 펴낸 ‘프로’ 이야기꾼이 됐다. 활동 무대도 청소년소설에서 성인문학으로 넓어졌다. 전씨가 2007년부터 최근까지 각종 문학지에 발표한 단편 8편을 묶어 새 소설집 ‘주인님, 나의 주인님’(은행나무)을 펴냈다.

수록작 주인공들은 모두 폭력·집착·음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즐거움에 취해 있다.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도,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피해자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으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설명하려는 듯하다.

‘오늘의 반성문’은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아버지와 학교 급우들의 폭행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던 정필은 나중에는 아예 맞는 것을 즐기게 된다. “나는 그 누구에게 구타당할 때보다도 더 기쁘게 얻어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정필의 독백은 섬뜩하면서도 연민을 자아낸다.

‘재이’ ‘K 이야기’ ‘작가 지망생’ 등 다른 수록자들도 모두 폭력에 중독된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드러낸다. 전씨는 ‘작가의 말’에서 “내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싱싱하고 검붉은 피를 보며 스스로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