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갓 태어난 내 아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정우진(37) 복원연구팀장은 2009년 2월 말 지리산 중턱의 한 바위굴에서 반달가슴곰이 낳은 첫 새끼를 발견했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서울 마포구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만난 정 팀장은 “새끼가 태어났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복원사업이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2004년 5월 종복원기술원(당시 반달가슴곰 관리팀)에 입사한 그는 그 해 10월 러시아 연해주에서 반달가슴곰 6마리를 들여와 자연적응 훈련을 거쳐 지리산에 풀어놓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리산에서 8년 동안 줄곧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반달가슴곰에 관해서는 우리나라 최고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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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정우진 복원연구팀장이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에 얽힌 그간의 애환과 경험담을 얘기하고 있다. |
당시 반달가슴곰 새끼를 발견한 것은 기대 밖의 수확이었다. 당시 정 팀장은 9명의 팀원과 함께 미리 파악해 둔 반달가슴곰의 동면굴로 향했다. 2005년 북한에서 들여와 풀어놓은 암컷(관리번호 08번)이 겨울잠을 자는 동안 목에 부착한 위치추적용 발신기를 교체하기 위해서다. 정 팀장과 수의사가 가까이 갔는데도 이 곰은 도망가지 않고 굴에 웅크리고 있었다. 수의사가 마취총을 쏜 후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데, 그때 어미 품안에 있던 새끼(관리번호 31번)가 작은 소리를 냈다. “곰의 나이를 고려하면 출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보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고 정 팀장은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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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진 팀장이 지난 4월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수신기를 들고 곰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다. |
정 팀장과 팀원들은 어미곰이 마취에서 깨어나지나 않을까 걱정돼 서둘러 발신기를 교체했다. 또 포획 때 하는 체온, 머리둘레, 키, 발바닥 크기, 이빨 크기, 몸무게 측정 등도 최대한 빨리 끝내고 도망치듯 현장에서 철수했다. 이들은 겨울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한참 뒤 다시 이곳을 찾았지만 어미곰과 새끼는 다른 데로 이동해버린 뒤였다. 겨울잠을 자던 곳 근처에 가자 경계하는 소리를 내 멀지 않은 곳에 새 보금자리를 꾸렸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정 팀장은 “어미곰이 예민한 상태라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 조용히 하산했다”고 했다.
◆“반달가슴곰은 내 운명”
정 팀장이 본격적으로 동물 생태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경남대 생물학과 1학년 때. 친구를 따라 우연히 학부 연구실의 수달 조사에 동행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군 복무를 마치고 2학년으로 복학한 그는 곧바로 연구실에 참여해 본격적으로 수달의 생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서 동물을 관찰하는 게 좋았다”고 했다. 수달 생태 연구로 2003년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2004년 5월 종복원기술원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포유동물을 전공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이 일은 천직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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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발신기 교체를 위한 반달가슴곰 포획 작업에 앞서 정우진 팀장(뒷줄 왼쪽)과 동료들이 안전장비를 착용한 채 작전회의를 하고 있다. |
정 팀장이 처음 반달가슴곰을 만난 것은 입사한 지 5개월째인 2004년 10월. 러시아 연해주에서 반달가슴곰 6마리가 들어왔다.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와 육로로 이동하다 보니 종복원기술원에 도착한 것은 주위가 이미 어두워진 늦은 오후였다. 아직 태어난 지 10개월밖에 안 된 곰들이라 몸무게는 10∼20㎏으로 다 컸을 때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정 팀장은 “이 귀여운 곰들이 고향을 떠나 낯선 한국에서 살게 됐는데 힘들지나 않을까 걱정됐다”고 첫 대면 당시를 떠올렸다.
곰들은 5일 동안 검역과 건강검진을 거친 뒤 5000m² 규모의 자연적응훈련장에서 2∼4주 적응훈련을 했다. 정 팀장은 먹이를 주고 1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카메라 8대로 곰들을 관찰했다. 어떤 곰이 누구랑 잘 어울리고, 먹이는 주로 무엇을 먹는지를 기록했다. 배설물의 상태를 점검하고 건강도 살폈다. 이곳에서 스스로 먹이를 구하는 방법을 터득한 곰들은 지리산으로 투입됐다.
◆“힘들어도 좋아하는 일이라 행복”
연구 대상이 수달에서 반달가슴곰으로 바뀌었지만 정 팀장은 행복했다. 발신기 교체를 위한 포획 작업을 하러 매주 두세 차례 산에 오르는 일도 즐겁기만 했다. 산을 탈 때는 등산로가 아닌 곳으로 다닌다. 곰이 다닐 만한 곳을 추적하기 때문에 길이 험하다. 겨울에는 눈과 얼음 때문에 미끄러져 다치기 일쑤고 무릎이 까지는 것은 얘깃거리도 안 된다. 각종 장비를 넣은 배낭은 보통 15∼20㎏에 달한다. 포획 장비를 넣으면 30㎏에 육박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는 “육체적으로 힘들고 위험할 때도 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해서 행복하다”고 했다.
곰도 꾀가 늘고 있다. 새끼 때는 종복원기술원 직원을 만나도 나무 위로 올라가거나 두리번거리는 것이 고작이어서 포획이 쉬웠다. 하지만 지금은 무조건 도망간다. 나무 위로 도망갔다가 잡힌 경험이 있는 곰은 나무 위로는 올라가지 않는다. 포획 덫을 피해가는 요령도 늘었다. 드럼통 2개를 연결하고 안에 먹이를 넣어 곰이 먹이를 집으면 드럼통 입구 위에 설치된 문이 내려오면서 가두는 장비가 있다. 처음에는 효과가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자 곰이 문이 못 내려오게 한 발을 뺀 채 먹이만 꺼내가는 일이 벌어졌다. 정 팀장은 “곰의 꾀가 늘어가는 만큼 포획 작업이 힘들어진다”며 “오히려 곰이 여러 가지 상황에 잘 적응해 가는 것 같아 흐뭇하다”고 했다.
반달가슴곰의 최대 천적은 올무다. 2005년 연해주에서 들여온 관리번호 18번 곰도 2009년 여름 올무에 걸려 허리에 철사가 파고들어간 상태로 발견됐다. 정 팀장은 “당시 발신기 교체를 위해 포획 작업을 하다 올무에 걸린 것을 발견했다”며 “가족이 다친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이 곰은 종복원기술원으로 옮겨져 봉합수술을 받은 뒤 다시 지리산으로 돌아갔다. 이후 이 곰은 2010년 새끼 두 마리를 낳았고, 올해에도 두 마리를 더 출산했다.
◆“복원사업 성공 때까지 힘 보태고 싶어”
반달가슴곰은 꿀을 훔치고 염소를 습격하는 등 말썽을 피우기도 한다. 하지만 보험으로 보상이 이뤄지고 인명피해도 아직 없다. 그러다 보니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생각도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복원사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2006년 조사에서는 지역주민의 46.1%만 동의했으나 올해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75.0%로 높아졌다.
지금까지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 34마리 중 19마리가 살아남았다. 지리산에서 태어난 새끼는 10마리 중 8마리가 살아 있다.
현재 지리산에 살고 있는 것은 27마리. 2020년이면 자체 생존이 가능한 50마리 규모가 될 것으로 종복원기술원은 내다보고 있다. 정 팀장은 “한때 우리나라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반달가슴곰이 이제는 어엿한 지리산의 한 가족이 됐다”며 “복원사업이 완벽한 성공을 거둘 때까지 계속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우상규 기자 skwoo@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