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마이 리틀 히어로' 빛나는 아역 지대한·황용연군

세상 편견 아랑곳않고 영화 속 자신들 모습이 마냥 신기한 두 소년
“친구들이 까만 피부 놀리면 선생님한테 이르면 되죠”
“(피부색 갖고 놀리는 영화 대사가) 기분 나쁜 건 없었고요. 근데 실제로도 좀 놀리는 애들이 있긴 있었어요. 그럴 때는 어떻게 못 해요.”(황용연군)

“애들이 놀리면 선생님한테 이르면 돼요! 선생님이 혼내요. 그러면 안 놀려요.”(지대한군) 

9일 개봉한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에는 다문화 가정 소년 두 명이 나온다. 영화배우는 꿈에도 생각 못 하다가 첫 스크린 데뷔를 한 지대한(11)·황용연(12)군이다. 아버지가 스리랑카에서 온 대한군은 영화에서 주인공 ‘영광’ 역을 맡았다. 용연군은 어머니가 가나 출신이다. 영광이의 친구 ‘승준’이로 나온다.

지대한(왼쪽)·황용연군은 촬영 중 가장 재미있던 일로 조연으로 출연한 “(이)광수형을 만난 거”를 첫 손에 꼽았다.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에 나오는 이광수와 친해진 데 마냥 신나했다.
김범준 기자
‘마이 리틀 히어로’는 뮤지컬이라곤 본 적도 없는 다문화 가정 아이가 100억원대 뮤지컬 ‘조선의 왕 정조’ 오디션에 도전하는 내용이다. 영화에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편견이 그대로 반영됐다. 천진한 두 소년은 이를 개의치 않았다.

대한군은 주연으로 데뷔하는 행운을 잡았지만 연기에 대해 “아무 생각 없었다”고 밝힌다. 배우를 물색하던 영화제작진과 처음 만난 때는 2011년, 경기 안산의 다문화센터에서였다.

“조감독님하고 피디님이 왔어요. 전 별 얘기 안 했어요. 그냥 용돈을 주셨어요. 만원. 떡볶이 사먹었어요.”

제작진은 800명의 아이들을 만나본 뒤 대한군을 캐스팅했다. 800대 1의 쟁쟁한 경쟁률을 뚫은 거라고 알려주자 대한군은 답했다.

“제가 안 뚫었어요.”

용연군은 대한군보다 한 살 많은 형답게 조금은 어른스러웠다. 영화와 인연을 맺은 건 방현주 아나운서의 소개 덕분이었다.

“전 연기가 원래 하고 싶었어요. TV에 나오는 연예인을 보니 멋있어서요. ‘해를 품은 달’의 여진구랑 한가인을 제일 좋아해요. 연기를 잘해서요.”

평범한 초등학생인 두 아이가 어엿한 배우로 제몫을 하기까지는 집중 훈련의 힘이 컸다. 특히 대한군에게 뮤지컬을 위한 발레 연습은 고역이었다.

“춤 추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다리를 (일자로) 아예 못 찢었는데 찢게 됐어요. 맨 처음에는 진짜 아팠어요. 도는 것도 힘들었어요. 빨리빨리 (세 번을) 연결해야 하는데 계속 연습해도 어떨 때 한 번만 돼서 울기도 했어요.”

대한군에게 춤이 장애였다면 용연군은 ‘영광이가 필리핀으로 갈 때 우는 연기’가 마음대로 안 됐다.

“체질이 아니에요. 눈물이 많이 안 나요. 처음에 못 울어서 감독님이 혼자만의 시간을 줬어요. 정말로 대한이를 다시는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눈물이 났어요. 평소에도 힘든 일 있어도 별로 안 울어요. 엄마아빠 보고 싶을 때, 그때는 울어요.”

삼남매 중 둘째인 용연군은 친부모를 모두 잃었다. 8살 때인 2008년 어머니가 뇌출혈로 숨진 데 이어 아버지마저 2년 뒤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다행스럽게도 김해성 목사(지구촌사랑나눔 이사장)가 삼남매를 입양했다. 방 아나운서는 삼남매의 이모를 자처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힘든 일을 겪었지만 용연군은 밝고 웃음이 많았다. 말 한마디에도 유머와 해학을 넣으려 했다. 용연군이 꼽은 제일 마음에 드는 장면도 극중 뮤지컬 음악감독이 영광이보다 까무잡잡한 용연군을 보고 ‘(영광이가)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라고 놀라는 대목이다. 어찌보면 무신경한 대사이지만 용연군은 “그게 제일 마음에 들어요. 웃겨서요”라고 즐거워한다.

두 소년은 기술적으로 덜 훈련됐기에 오히려 꾸밈 없고 순수한 연기를 보였다. 이 영화의 정훈영 조감독은 “일반적으로 아역배우들은 연기나 대사·눈빛·액션에 패턴이 있다”며 “두 아이는 기본만 배우고 현장에 오니 훈련된 배우보다 순수함·자연스러움이 많이 나오고 결과적으로 영화의 진정성을 전달하는 데 득이 됐다”고 전한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스크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신기해했다.

“영화에 내가 나오니 신기해요. 그리고요 챙피했어요. 그냥 (내가) 나오니까, 부끄러웠어요.”(대한군)

촬영기간 중 학교에 가지 않은 것도 행복했다. 오전 8시에 집에서 나가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공부는 영화 스태프에게 영어부터 과학·한자까지 과목별로 배웠다. 갓 데뷔했지만 영화에 대한 두 아이의 취향은 확고했다.

“‘과속스캔들’이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 제일 재밌었어요. ‘해리포터’도요. 아 ‘디 워’!”(대한군)

“(심형래 감독의) ‘디 워’ 진짜 재밌어요. 용이 막 건물을 감고요, 완전 멋있어요. (봉준호 감독의) ‘괴물’도 재밌어요.”(용연군)

“전 ‘괴물’은 싫어요.”(대한군)

용연군은 앞으로 행복을 전파하는 배우가 되길 소망했다. 악역이나 안티팬도 생기겠지만 “현실에서 행복한 사람이 돼서 행복을 전파하고 싶다”고 밝혔다. 대한군도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희망했다. 벌써 편집의 힘도 간파했는지 작은 비밀들을 얘기해주며 “이건 쓰면 안 돼요. 약속하세요”를 연발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