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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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대필 22년전 잘못된 판결 바로잡는 것”

입력 : 2013-01-11 22:52:38
수정 : 2013-01-11 22: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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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투병’ 강기훈씨 삶을 지탱해주는 한가닥 희망
1월 말 재심 재판 속개돼…“남은 날 많지 않지만 최선”
‘강기훈.’ 역사 속에 묻혔던 이름이 22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그는 1991년 정국을 뒤흔든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당사자다.

강씨가 오랜만에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12월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였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강씨 사건 재심 결정을 내렸고 그는 이날 첫 재판에 참석했다. 재심 첫 재판 이후 칩거해온 그를 9일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199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서대필 사건’의 당사자 강기훈씨가 9일 경기 일산 한 사무실에서 재심에 임하는 심경을 설명하고 있다.
1964년생으로 올해 49세인 강씨 얼굴엔 병색이 완연했다. 그는 간암 투병 중이다. 강씨가 밝힌 ‘그 사건’ 이후 삶은 이랬다.

1994년 출소한 그는 이곳저곳에서 강연하며 자신의 경험담을 알렸다. 주로 대학과 사회단체가 많았고 사법연수생을 상대로 강연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후회했다고 한다.

“과거 얘기를 꺼낼수록 스스로 버티기가 힘들었어요. 한번 기억을 더듬고 나면 그 잔상이 정말 오래 남아 너무 괴로웠거든요.”

강씨는 이후 일부러 고되고 정신없는 일을 찾았다. 출소 직후 자신의 옥바라지를 한 지금의 아내와 가정을 꾸려 평범한 생활도 시작했다.

하지만 ‘보통사람’의 삶은 쉽지 않았다. ‘강기훈’이라는 역사 속 존재가 알려지는 일이 많았고 그 탓에 안정적인 회사 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10여년간 옮긴 직장이 5곳이나 된다.

불행이 겹쳐 이 와중에 병까지 얻었다. 지난해 5월 강씨는 간암 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병원에서 정기 치료를 받고 있다.

“오랜 시간 지속된 억울함에 병까지 생겼어요. 2008년과 2010년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여의고 정신적으로 많이 초조했던 터라 그땐 정말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강씨가 삶을 지탱하는 한 가닥 희망은 현재 진행 중인 재심 재판이다.

“내게 남은 날이 많지 않지만 그때까지 건강해 재심을 잘 받고 싶습니다. 되도록 즐거운 생각만 하고 예전에 잘 하지 않던 농담도 해보려고 합니다.”

강씨의 다음 재판은 이달 말 열린다. 그는 “힘없고 약한 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게 바로 법의 정신”이라며 “과거 잘못된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지 꼭 지켜보고 싶다”고 말했다.

강씨는 1991년 당시 전국민족민주연합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자살하자 유서를 대필한 자살 배후로 지목돼 검찰에 기소됐다.

고양=조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