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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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 발레

국력신장과 함께 위상 높아져
안무가 해외진출 등 ‘무용한류’
계사년 새해를 맞아 신년음악회가 한창이다. 한 해 동안의 수고를 서로 칭찬하고 새해를 힘차게 열자는 취지로 열리는 문화행사다. 며칠 전 ‘희망찬 국민, 더 큰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2013 신년음악회’가 열렸다. 한국을 빛낸 차세대 유망주와 장애를 예술로 승화한 연주자, 그리고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등이 출연해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소프라노 신영옥이 부른 ‘아리랑’이 귓가를 맴돈다. 우리 민족의 한과 애환이 서려 있는 ‘아리랑’이 지난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음을 상기시킨 의미 있는 무대였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한국 예술학
지난 한 해 우리나라는 무역 규모 세계 8위권 진입, 국가브랜드 가치 세계 9위, 외래관광객 1000만 시대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성과는 더욱 눈부시다. 전 세계를 강타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비롯한 K-팝, 드라마, 영화 등 소위 한류 열풍에서 보듯 한국문화의 저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문화의 힘은 국력과 비례한다. 선진국 대부분이 문화강국이라는 사실은 새삼스럽다. 예컨대 14세기 이탈리아에서 발원돼 프랑스, 북유럽, 러시아 그리고 20세기 후반 미국을 거쳐 아시아로 향하는 발레의 이동경로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발레의 중심 축이 국력 신장과 맞물려 서진(西進)하고 있는 셈인데, 최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가 신흥 발레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음도 이채롭다.

오늘날 세계 속 한국발레의 위상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한국발레의 성장 중심엔 최태지와 문훈숙이 존재한다. 한국발레의 양대 산맥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을 이끌고 있는 두 사람은 특유의 열정과 에너지로 발레 한류를 견인하고 있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살아있는 전설’ 강수진을 비롯해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수석무용수 서희, 워싱턴발레단에 입단한 김현웅, 그리고 김용걸에 이어 파리오페라발레단 정단원으로 선발된 박세은 등 주목할 만한 인재로 넘쳐난다.

어디 그뿐인가. 재독 안무가 허용순의 작품은 유럽 직업발레단의 고정 레퍼토리로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한국 안무가의 현대무용 작품이 유럽 직업발레단으로 수출됐다는 소식도 반갑다. 사실 한 나라의 무용계 위상은 실력 있는 안무가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로 판가름 난다. 그런 점에서 이제 한국은 단순히 무용수의 진출에 머물지 않고 작품, 나아가 안무가가 진출하는 등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100여년 전 서양무용의 수용자에서 이제 발신자적 역할로 전환된 것이다.

최근 한국 공연예술의 국제적 위상이 사뭇 달라졌음이 여러 사례에서 감지된다. 2012년 공연예술계의 유엔총회로 불리는 국제공연예술협회(ISPA) 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됐다. 예사롭지 않은 징후다. 1949년 설립된 ISPA는 50여 개국 600여명의 공연예술 전문가를 회원으로 거느린 세계 최대 규모의 공연예술 전문기구로 명성이 높다. ISPA 총회의 서울 개최는 탈서구화시대 세계 공연예술시장에서 아시아, 특히 한국의 성장 가능성을 주목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롭다.

19세기 이른바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 구현을 통해 일찍이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아시아의 맹주로 자처했다. 전통시대 중화(中華)의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던 중국, 그리고 소중화(小中華)로 자위한 조선이 근대의 길목에서 일본을 통해 서구 공연예술을 이식했음은 아이로니컬하다. 이젠 우리 차례다.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문화중심국가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를 중심축으로 세계 공연예술의 지형 변화가 예견되는 기분 좋은 새해 아침이다. 비상하자, 세계로!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한국 예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