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어제 “북한이 핵실험 도발을 감행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2월을 넘겨야 할 이유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한다. ‘기습 실시’ 전망도 내놓았다. 적중 여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숨이 막힌다. 한반도가 대체 어디로 떠내려가는 것인가.
지난해 4월30일 “도발과 보상이 반복되는 대북정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언급한 이가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다. 앞서 4월13일 감행된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일침을 날린 것이다. 따끔했을까. 그렇지 않다. 북한은 지난달 또 장거리 미사일을 쐈고, 이제 핵 협박극을 벌이고 있다. 조금이라도 따끔했다면 이럴 리가 없다.
인간은 패턴을 읽는 존재다.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패턴도 읽는다. 먼 하늘의 구름에서 어린 시절 친구였던 강아지를 찾아내고 그리운 할머니 얼굴을 떠올린다. 과도하면 ‘변상증(變像症)’ 진단을 받을 수도 있지만 패턴을 읽는 능력이나 경향은 대개 유익하게 작동하는 법이다. 누가 믿을 만하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쉽게 구별하는 인지적 기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만이 아니다. 스키너의 쥐, 파블로프의 개도 패턴을 읽는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특정 행동이 보상을 줬다면 그 보상을 찾아 움직이게 마련이다. 오바마의 대북 경고에선 이에 관한 통찰이 아쉬웠다. 국제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북한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을 자극하는 직접적 동인은 기존 제재를 강화한 유엔 안보리 결의 2087호다. 북한은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펄쩍 뛴다. 조선중앙통신은 그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국가적 중대조치를 취할 단호한 결심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23일 외무성 성명, 24일 국방위 성명 등에 이어 갈 데까지 간 것이다.
대북 경고는 무수히 쏟아진다. 중국도 가세했다. 하지만 북한 권력층은 20년 동안 ‘도발-제재-협상-보상’의 패턴을 거듭 읽은 집단이다. 빈말뿐인 경고는 안 먹히게 돼 있다. 미국, 중국이 경고 레벨을 아무리 올려도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종이호랑이 앞에서 겁에 질릴 멧돼지는 없다.
북한은 우리가 유엔 제재에 직접적으로 가담할 경우 ‘강력한 물리적 대응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협박했다. “한반도 비핵화는 종말을 고했다”는 공언도 했다. 우리 정부와 사회도 북한에 한심한 패턴으로 읽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북한이 송곳니를 드러내면 남남갈등이나 빚는 먹잇감인 것이다. 왜 이 모양인지 모를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이런 상황에서 새 남북관계를 이끌어 가야 한다. 예삿일이 아니다. 북한은 도발 패턴에 인이 박여 공포와 불안에 조심스럽게 반응해야 살아남는다는 본능적 지각마저 잃어버린 상대다. 걸핏하면 핵을 내밀고 미사일을 꺼낼 것이다. 갈 길을 찾기가 쉬울 턱이 없다.
박 당선인은 ‘국민행복’과 ‘새 희망’을 강조한다. 하지만 국가 안위와 국민 생명·재산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박근혜표 행복과 희망이 뿌리 내릴 까닭이 없다. 박 당선인에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비장의 청사진이 있다. 하지만 유화적 청사진을 지금 내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기본을 챙겨야 하는 것이다. 박 당선인은 외교·안보·통일 정책을 총괄할 국가안보실 인선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나아가 일반적인 위기 관리만이 아니라 북한이 핵 도박을 포기하는 각도의 ‘새 패턴’을 만들 중책을 부여하고 그 중책 수행이 가능하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장관급 기구 이상의 파워 발휘가 가능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뭔 새 패턴이냐고? 두말하면 잔소리다. ‘핵 도박→ 북한 지옥’의 패턴 말고 달리 뭐가 있겠는가.
논설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