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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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입국 4만달러 시대를 열자] 지식집약형 미래 경제산업 주도하려면

수학·과학 성취도 세계 1∼2위 불구 흥미도는 최하위
졸업생 3명 중 1명 다른 길… 연구자 처우 개선 급선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분야 양적 지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1년 총 연구개발(R&D)비는 49조8904억원으로 세계 6위권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비중은 4.03%로 이스라엘(4.40%)에 이어 세계 2위다. 수학·과학 성취도 국제비교연구(TIMSS) 등 국제 성취도 비교나 국제올림피아드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과학 실력은 항상 세계 1∼2위를 다툰다.

이 같은 ‘토양’에도 불구하고 이공계 기피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초·중·고생의 수학·과학 흥미도는 세계 최하위권이고 이공계 대학으로 진학하려는 고교생은 점차 줄고 있다. 유학을 떠난 석·박사의 대부분은 국내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과학기술자의 성과와 열정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우대받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초중등 교육 “수학·과학 흥미도 높여야”

세계 각국의 초등 4학년생과 중학교 2학년생 60만명을 대상으로 한 ‘TIMSS 2011’ 결과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학 성취도는 1∼2위를, 과학 또한 1,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수학·과학 흥미도는 각각 50위, 48위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었다. 이론 중심의 주입·암기식 교육이 빚어낸 결과다.

과학기술 연구자들은 이공계 기피 현상 해소를 위한 최우선 과제로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처우개선, 사기진작 등을 꼽는다. 사진은 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실 모습.
한국연구재단 제공
이명박 정부는 2011년 5월 ‘제2차 과학기술 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2011∼15년)’을 내놓으면서 과학기술 이해·흥미·잠재력을 높이는 초중등 교육 방안으로 STEAM(과학·기술·공학·예술·수학)형 융합인재교육을 제시했다.

또 2010년 1.04% 정도에 불과하던 핵심 이공계 영재를 영재학급, 영재교육원, 과학영재학교 확대로 2015년까지 1.6% 수준까지 늘린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STEAM 교육은 교원 인식 및 시설 미비 등의 이유로, 영재교육은 최상위 학생들의 여전한 이공계 진학 기피 분위기로 미완의 과제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1년 5월 고교 자연계 상위 10% 성적 우수자를 대상으로 대학 진학 희망 학과를 조사한 결과 의·치·한의예과를 꼽은 학생이 40%에 육박했다. 하지만 물리학과와 전기공학과 등 이공계열 희망 학생은 각 2%대에 그쳤다.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을 지낸 김창경 한양대 교수는 박근혜 차기 정부가 제2의 이공계 성공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현 정부는 STEAM 선도 시범학교를 80개교, 영재학급을 3521개교로 늘렸으며 스토리텔링형 수학·과학 교과서를 개발하는 등 이공계 인재 양성을 위한 씨앗을 뿌려놨다”고 평가했다. 이어 “‘강남 아줌마’들이 자녀를 의약 계열이나 전문직이 아닌 이공계로 보내려는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법조·경제 전공자들이 독식했던 정부 산하기관이나 사회 요직에 이공계 사람들이 속속 진출하는 등의 정치적 제스처가 최우선으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자 처우 개선과 사기 진작 급선무

대학 이후 이공계 활성화 방안은 상대적으로 단순, 명쾌한 편이다. 자연·공학 계열 학부생과 석·박사 과정생이 점차 줄고 유학파들이 국내로 돌아오기를 꺼리는 것은 다른 직종에 비해 낮은 임금과 취업난, 산업 수요 변화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 따르면 이공계 학부 졸업생이 전공한 분야에 취업하는 비중은 31.8%에 불과하다. 3명 중 1명꼴로 다른 길을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이공계 연구자는 신분 또한 불안한 편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단기 전문계약직은 2009년 32%에서 2011년 37%로 늘었고 대학의 비정규직 규모도 67.5%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전공자들은 자꾸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딴 한국인들은 귀국을 포기하고 현지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

2011년 한해 해외로 떠난 이공계 대학원생은 1만2240명으로 2006년(1만866명)보다 1300여명 늘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한국 두뇌유출지수 또한 2010년 3.69점(42위)으로 2002년(4.70점)보다 더 악화됐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한국인의 70%가량은 현지에 체류할 계획이며 45.4%는 “반드시 미국에 남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교과부는 고등교육의 특성화 및 내실화로 글로벌 연구역량을 강화하고 선진국형 연구환경을 조성해 연구자의 연구몰입도를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연구자들은 공공기관 연구·생산직 인력 고용 의무화 및 정년 연장 등 처우 개선과 함께 과학 인재에 대한 사기 진작 방안도 정책 중심에 놔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내놓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구자들은 ‘박근혜 정부가 향후 5년간 추진해야 할 과제’로 ▲양질의 과기 기반 일자리 창출(78.36%) ▲중소·중견 기업 글로벌 경쟁력 강화(72.51%) ▲과학기술인 사기 진작(69.1%) 등을 꼽았다.

KISTEP 차두원 연구위원은 “초중등 및 대학 교육에서 창의융합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을 선행적으로 지원하고 대학원 과정 이후 연구 현장에서는 연구에 몰두해 우수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연구 몰입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