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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가요계·조폭 악연 한방에 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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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공연마다 지역 건달들 개입
일정 맞추려 더 센 조직 손잡아
K-팝 뜨면서 지방보다 해외로
2000년대 후반부터 거의 사라져
2000년대 중반 부산의 한 공연장에서 영화 ‘007’을 방불케 하는 탈출 작전이 펼쳐졌다. 

공연을 마친 가수를 소속사에서 사람들 눈을 피해 빼돌리려는 계획이었다. 지방공연을 간 가수가 지역 건달들에게 억류돼 강제로 나이트클럽 무대에 서는 사례는 21세기에도 발생했다.


유명 가수의 지역 공연 소식이 퍼지면 해당 지역에서 밤무대 사업을 하는 조폭들은 서울 연예기획사의 동의 없이 지방의 몇몇 나이트클럽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가수가 지방에 오면 무조건 잡아다가 힘으로 무대에 세웠다.

연예기획사의 한 관계자는 “지방 공연을 하러 다닐 때마다 지역 건달들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다”며 “연예계의 많은 사람이 조폭과 연결된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가수와 조폭의 밀월관계

광복 이후부터 지방의 공연사업은 지역 건달들의 먹잇감이었다. 1960년대 신중현사단을 이끌고 전국 투어에 다닌 신중현씨 역시 그의 책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2006)에서 “당시에는 어쩔 수 없이 조폭을 대동하고 지방 공연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지역 건달의 횡포를 막기 위해선 더 센 집단의 보호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연예계에는 1990년대까지 조폭 계보가 돌았다. 연예계 관계자들은 전국구·지역구 조폭의 서열과 인적 사항을 숙지했다. “나 영등포의 A요. 씩씩한 애들 보냈으니 이야기 좀 합시다”는 전화를 받으면 A의 세력을 파악하고 뒷배로 둔 더 센 조폭에게 구조요청을 해야 했던 것이다.

지방 건달들은 무려 2000년대 중반까지 그들과 거래하지 않으면 사업 제안을 위해 ‘씩씩한 애들’을 보냈다고 한다. 이쪽 세계에서 ‘씩씩한 애들’은 주먹 잘 쓰고 싸움 잘하는 에이스를 의미했다.

연예계 한 관계자는 “그래서 어느 지역에서나 보호받을 수 있는 전국구에 끈을 대는 것이 중요했다”며 “한편으로는 연예계에 뜻이 있어 일을 시작했을 뿐인데 내가 왜 얼토당토않게 조폭과 사투를 벌여야 하나는 자괴감이 밀려왔다”고 전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한 장면. 2000년대 중반까지 전국 공연을 진행했던 가요계 관계자들은 지역 건달의 횡포에 시달려야 했다.
◆연예계 세대교체와 K-팝

가수들의 지방공연에서 조폭의 영향력이 거의 사라진 건 2000년대 후반이었다. 이전까지는 대다수의 유명 댄스 가수들은 지방에 갈 때마다 첩보 작전을 펴며 피해다니거나 잡혀서 무대에 서야 했다. 막강한 팬덤을 등에 업은 아이돌 그룹이 아닌 이상 유명 기획사 소속 가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이트클럽에 어울리지 않는 발라드 가수만이 겁박에서 자유로웠다.

그런데 연예산업의 팽창으로 조폭 계보에 무지한 새로운 세대가 대거 영입되면서 ‘어깨들’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K-팝의 부상으로 많은 가수가 지방 대신 해외로 뻗어나간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00년대부터 일을 시작한 젊은 매니저들은 목소리를 깔고 “나 누구요”라고 전화하는 조폭에게 “미팅 중이라 바빠서 끊습니다”라고 용감하게 대응했다. 배경 지식이 없어 잘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두 명이 아닌 대다수가 이러는 상황에서 매번 찾아가 혼내주는 건 불가능했다. 조폭으로서 주변에 이야기하기에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이어 조폭들이 탐내는 유명 가수의 소속사에서 지방보다 해외 투어 일정에 집중한 것이 결정타를 날렸다. 연예계 한 관계자는 “K-팝이 부상하면서 조폭들 사이에서 ‘(유명 가수를 무대에 세우고 챙기는 수입이) 재미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덕분에 지방공연에서 서울 기획사가 돈을 떼이는 사태도 사라졌다. 이전에는 서울의 연예기획사(서울사)가 지방의 공연기획사(지방사)와 계약을 맺으면, 지역 건달들이 지방사에 뒷배를 봐주겠다며 돈을 뜯어가는 사례가 빈번했다. 결국 중간에 사라지는 돈 때문에 서울사에서는 손해를 보고 공연하기도 했다고 한다.

연예계 관계자는 “조폭과 엮이면 소속 가수들의 이미지 때문에 경찰의 도움을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며 “여전히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는 99%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