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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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이 미래다 '그린 라이프'] 조상 대대로 빚어온 우리의 술… 세계화 '기지개'

지역마다 다양한 명주…대한민국 대표 문화상품
프랑스 와인, 영국 스카치 위스키, 일본 사케, 멕시코 데킬라….

술은 한 나라의 문화를 대표하는 음료로 널리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주는 삼국시대부터 중국에 명성이 전해질 만큼 역사가 깊다. 조선시대에는 가문마다 빚는 가양주가 발달해 문헌에 기록된 술이 340여가지나 됐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상당수 우리 전통주의 명맥이 끊어졌다. 최근 들어 막걸리 열풍과 같이 우리 술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통주의 인지도는 여전히 낮다. 세계 시장에 우리 술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적극적인 전통주 복원과 홍보가 필요한 이유다.

◆계절과 지역에 따라 다양한 전통주

우리 조상은 화창한 봄날이면 음식과 집에서 담근 가양주를 들고 소풍을 갔다. 이때 들고간 술은 진달래꽃을 넣어 만든 ‘두견주’나 복숭아꽃이 들어간 ‘도화주’, 소나무 새순을 넣은 ‘송순주’가 있었다.

음력 5월 5일인 단오에는 석창포 뿌리로 빚은 ‘창포주’를 마셨는데, 식욕 증진과 피로 회복에 효과가 있다.

추석 명절에는 햅쌀로 ‘신도주’를 빚어 제사를 지내고 마시는데, 그중 가장 많이 빚어진 것이 오늘날에도 즐겨 찾는 ‘동동주’다. 겨울철 대표적 술로는 설에 온 가족이 마시는 ‘도소주’가 있었다. 산초와 도라지 등 약재를 붉은 주머니에 담아 마을 우물에 넣었다가 꺼낸 후 담근 도소주는 나쁜 기운을 물리쳐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며 마셨다.

또 농경사회인 우리나라는 절기마다 술을 빚어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며 풍요를 기원했다. 이렇다 보니 지역과 날씨에 따른 원료와 다양한 양조법으로 갖가지 명주가 탄생했다.

붉은빛의 이슬이라 불리는 경기 파주의 감홍로는 녹두부침개와 찰떡궁합을 이룬다. 강원 홍천의 옥선주는 높은 도수와 시원하고 화한 향기가 특징으로, 강원도 오징어 순대와 잘 어울린다. 서울 삼해주(三亥酒)는 글자 그대로 음력 정월의 첫 돼지날(亥日)부터 12일 간격으로 빚는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사과향이 일품이다.

연꽃 향기가 그윽한 충남 아산의 연엽주는 병자호란 때 이완 장군이 부하의 사기를 북돋우고자 빚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지리산 천년의 향기를 담은 경남 함양의 국화주는 서리 맞은 야생 국화에 지리산 맑은 물로 담가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즐겼다.

유일한 사찰 법주인 전북 완주 송화백일주는 숙취가 없고 신경통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시면 신선이 된다는 전남 담양의 추성주와 속리산 솔향을 머금은 충북 보은의 송로주 역시 우리의 명주이다. 농한기에 몸을 보양하는 제주의 오합주는 간단한 제조법으로 제주도에서 매우 인기가 높다.

◆전통주의 대중화는 아직


전통주는 우리 정서와 체질에 잘 맞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술이자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이다. 최근 들어 우리 술에 관심이 쏠리고 소비도 늘면서, 우리 술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주점과 상점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의 백화점에 막걸리 전문매장이 들어서고, 재즈 연주가 흥겨운 퓨전 형식의 주점도 생기고 있다.

문제는 막걸리나 동동주 등을 제외하고는 국민에게 전통주는 비싼 술, 선물용, 텁텁한 맛, 한정식에만 어울리는 술로 인식되는 데 있다.

전통주를 대중화하려면 우리 술의 발굴과 복원을 위한 연구개발을 강화해야 한다. 전통주 소비 확대를 위해 젊은 층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정부의 전통주 산업 육성을 위한 지속적인 지원이 중요하다.

일본은 프랑스 와인산업을 벤치마킹해 누룩 표준화와 재료의 지역 차별화를 실시해 사케(일본식 청주)의 품질을 높이고, 상품을 다양화했다. 또 일본 주류종합연구소는 전통주 자료조사, 홍보, 품질관리 분석, 품질평가 등 전통주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와인이 기후변화 등으로 경쟁력이 약화하자 산업지원을 위한 연구를 추진 중이다.

또한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막걸리 전문점이 들어서고 있지만 외국 술인 와인바, 사케바 등의 인기에는 뒤떨어진다. 따라서 전통주 하면 연상되는 기존 이미지에서 탈피해 카페, 바 등을 활용해 접근성을 높이고, 소믈리에(와인 웨이터)를 활용한 품질의 우수성도 알려야 한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서민의 술 막걸리가 국제회의 건배주로 등장하는 등 우리 술의 대중화, 고급화, 세계화 가능성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며 “우리 술에 어울리는 술병과 잔도 개발해 세계인들이 우리 술과 음식을 함께 즐기며 주도(酒道)를 체험할 수 있는 세계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