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의 두 번째 SUV 트랙스를 시승했다. 여유로운 제주도 도로를 달린 트랙스는 기대 이상의 기본기를 갖췄다. 껑충한 차체를 갖고도 출렁이지 않았고 1.4ℓ 터보 가솔린 엔진은 세계적인 다운사이징의 추세를 충실하게 따라갔다. 국내 소비자를 고려한 소음·진동(NVH)에 대한 대비도 눈에 띄었고 컨티넨털의 고급 타이어를 기본으로 장착하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도 신경을 썼다. 하지만 가격이 공개되자 소비자의 질타를 받고 있다. 출시 전 소문으로 들리던 가격보다 높은 것이 주요 원인이다. 쉐보레 트랙스의 시승 소감과 상품성에 대해 살펴봤다.
▲ 1.4ℓ 터보 가솔린 엔진의 주행성능은 합격점
국내에서 가장 인기없는 차종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가솔린 SUV다. 커다란 차체를 움직이는데 값비싼 휘발유와 낮은 토크의 가솔린엔진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다. 결국 연비가 낮아 불만으로 이어진다. 르노삼성의 SUV QM5, 현대·기아차의 일부 SUV가 가솔린 엔진으로 출시됐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트랙스는 한국지엠이 만든 두 번째 SUV다. 소형차 아베오를 기반으로 차체를 높이고 늘렸다. 여기에 1.4ℓ 가솔린 터보엔진을 얹었다. 제원상으로는 140마력, 20.4㎏·m의 토크를 보인다. 공인연비는 복합기준 12.2㎞/ℓ다. 아베오에 들어간 1.6ℓ 가솔린 엔진이 114마력, 15.1㎏·m의 출력임을 고려하면 엔진은 작아지고 출력은 높아졌다. 기아자동차의 쏘울 1.6GDI가 140마력에 17.0㎏·m이니 수치상으로는 가장 비슷하다.
트랙스를 타고 제주도의 한적한 길을 달렸다. 서울을 비롯한 도심과는 전혀 다른 길이다. 이따금 신호등이 나타나고 정체나 지체는 없다. 앞차가 서행을 하면 뒤따르다 기회를 봐서 추월한다. 주행 패턴이 도심과 전혀 다르니 연비나 출력에 대해 본격적인 평가는 어렵다. 하지만 차 자체의 성능을 평가하기엔 좋은 조건이다.
제주도 1180도로를 따라 바닷가에서 시작해 한라산을 오르고 내렸다. 뚫린 곳에서는 시속 100㎞/h까지 속도를 높였다. 가장 큰 특징은 1.4ℓ 엔진과 변속기의 효율중심 세팅이다. 출발과 동시에 변속기는 끊임없이 변속을 이어간다. 일상적인 가속 조건에서 엔진회전수(rpm) 2300을 넘기지 않고 꾸준히 변속한다. 시속 100㎞/h에 이르면 엔진은 2000rpm에 고정된다. 출력을 위해 고회전을 사용하는 가솔린 엔진이지만 터보차저를 추가해 낮은 회전 영역에서 힘을 뽑아냈다. 최고출력은 4900∼6000rpm에서 나오고 최대 토크는 1850∼4900rpm에서 나온다. 실제 주행에 사용하는 영역에 토크가 집중돼 효율적이다.
한적한 제주도의 길을 따라 다른 차의 흐름에 방해되지 않게 운전했다. 약 60㎞ 거리를 달린 뒤 계기반에 나타나는 연비는 14.5㎞/ℓ다. 복합공인연비는 물론 고속연비 14.1㎞/ℓ를 넘어선 수치다. 제주도의 도로 환경 덕택이지만 트랙스의 세팅도 연비에 한 몫 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트랙스의 변속기는 꾸준히 낮은 엔진회전을 유도한다. 그리고 내리막길이나 감속구간에서는 구름저항을 낮췄다. 0.36에 불과한 공기저항계수(Cd) 역시 연비 향상에 도움을 줬다.
공인연비 기록으로는 국내 SUV와 비교해 ‘좋다’고 말하긴 힘들다. 대부분이 디젤엔진을 장착한 데 비해 트랙스는 1.4ℓ의 가솔린 터보엔진이기 때문이다. 장점도 꼽아 볼 수 있다. 엔진 자체의 가격이 디젤보다 저렴하다. 특히 가솔린 엔진은 유지보수와 관련된 부품 가격이 디젤엔진보다 저렴해 오래 운행해도 큰 부담이 없다. 무게도 더 가볍고 소음과 진동에서는 디젤엔진에 비해 매우 조용하다. 게다가 엔진 배기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책정하는 국내에서는 2.0 디젤엔진 대비 연간 약 27만원의 절세효과까지 있다.
▲ 단단한 하체와 넓은 실내공간의 조화
트랙스는 소형차 아베오를 기반으로 했지만 차체의 크기가 큰 폭으로 변했다.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은 길이. 아베오 보다 205㎜ 늘어난 4245㎜다. 기아 쏘울보다는 125㎜ 길고 스포티지R 보다는 195㎜ 짧다. 외형은 크게 늘었지만 실내 공간을 좌우하는 축간 거리는 이보다 조금 덜 늘어났다. 아베오보다 30㎜ 늘어난 2555㎜다. 쏘울보다 5㎜ 크고 스포티지R 보다는 85㎜ 작다. 체급의 한계가 느껴진다.
쉐보레는 앞·뒤로 늘어날 수 없는 한계를 높이로 상쇄했다. 차고를 스포티지R 보다 높은 1670㎜까지 끌어올렸다. 차 옆에 사람이 서있을 경우 어지간한 성인 여성은 차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아베오 보다 155㎜나 늘어나 전혀 다른 차가 됐다. 늘어난 높이는 실내 공간에 여유를 줬다. 신장 183cm의 승객이 운전석에 앉았지만 머리 위로 주먹 하나의 여유가 있다.
높은 실내 공간의 최대 혜택이 바로 시트 배치다. 소형차에서는 보기 힘들게 조수석 폴딩 시트를 적용했다. 뒷좌석에 베이비시트 등을 장착한다면 조수석을 앞으로 접는 기능이 매우 편리해 보인다. 뒷좌석은 각도 조절은 안 되지만 폴딩은 된다. 엉덩이 시트를 앞으로 빼고 그 뒤로 등받이가 접어진다. 트렁크 공간과 함께 이어져 최대 1370ℓ의 평평한 적재공간이 생긴다. 트렁크 바닥에는 임시 주행용 스페어 타이어와 보스 오디오의 우퍼가 장착됐다.
▲ 작은 만족감을 좌우하는 ‘작은 기능’의 부재
쉐보레가 글로벌 소형 SUV로 개발한 트랙스의 전반적인 느낌은 기본은 갖췄으나 제대로 차려입지 않은 선머슴 같은 이미지다. 최근 등장하는 국산차답지 않게 실내 마무리나 부품사이의 간격들이 불만족스럽다. 차를 가장 먼저 만나는 도어 핸들은 앞·뒤로 덜컥덜컥 흔들린다. 천장 마감재는 속 빈 강정처럼 부실해보이고 저렴함이 묻어나는 실내 플라스틱 마감재는 아쉬운 부분이다. 달리기와 핸들링 같은 자동차의 기본기로 점수를 땄다면 아주 사소한 마감재로 점수를 까먹고 있다.
최상위 트림에도 선택조차 할 수 없는 기능들은 이 차의 한계를 드러낸다. 최근 국산차 메이커가 소비자 선호도 조사를 통해 경차에도 고급 옵션을 대거 추가한 상황을 보면 국내 소비자의 성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최고급 옵션인 LTZ 모델에서도 뒷좌석 열선시트, 버튼시동 스마트키, 오토에어컨 등의 기능은 추가할 수 없다. 생뚱맞게 변속 레버 기둥에 붙어있는 팁트로닉변속버튼은 스포티한 운전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아베오 등 기존 쉐보레 차에서 봤던 버튼이지만 트랙스에 장착되면서 오른쪽 암레스트와 간섭이 생긴다. 만약 차를 구입한다면 신차 전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작은 아쉬움 들이 운행중에 눈에 띌 수 있다.
▲ IT 강국 대한민국에 상륙한 쉐보레 ‘마이링크’
한국지엠 관계자들은 쉐보레 트랙스의 가장 큰 특징으로 ‘1.4ℓ 터보엔진’과 ‘보스오디오’ 그리고 ‘마이링크를 꼽았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작동되는 마이링크는 특히 쉐보레가 글로벌 시장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기능이다. 트랙스에 장착된 마이링크는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스마트폰에 내비게이션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작동시키고 화면과 음성은 자동차의 화면과 스피커를 이용한다. 음성인식 기능을 이용해 기능을 작동하지만 한국어 인식을 고려한다면 판단을 보류해야하는 기능이다.
트랙스의 마이링크로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려면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에서 1만원 상당의 애플리케이션을 구매해야한다. 스마트폰의 배터리와 통신망을 사용해 내비게이션을 구동한다. 따라서 다른 가족이 차를 탈 경우 내비게이션을 별도로 설치해야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어지간한 스마트폰에 ‘김기사’ 혹은 ‘T맵’과 같은 무료 내비게이션 앱이 제공되고 최신 기능의 내비게이션도 10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는 것을 고려하면 마이링크 옵션은 추천하기 힘들다.
▲ 디젤 모델과 4륜 구동 모델은 언제?
트랙스의 출시를 두고 많은 소비자가 디젤 모델과 4륜구동 모델을 기다렸지만 막상 출시된 것은 1.4ℓ 가솔린모델뿐이다. 훨씬 1.6 가솔린과 2.0 디젤 등 다양한 엔진을 갖춘 쉐보레 크루즈가 월간 2000대가량 판매되는 것을 고려하면 트랙스의 판매는 이보다 다소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데도 한국지엠은 디젤과 4륜구동 모델의 투입에 소극적이다. 한국 시장의 요구보다는 이미 지난해 트랙스를 출시했던 멕시코, 캐나다 등의 해외시장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가격도 문제다. 기존 사용하던 1.6ℓ 가솔린 엔진보다 출력이 좋은 1.4ℓ 가솔린 터보 엔진을 장착하고 차체를 새로 개발하면서 아베오에 비해 수백만원이 올랐다. 여기에 추가적인 가격 인상요인인 디젤 엔진과 4륜구동까지 더해지면 쉐보레 트랙스의 상품성은 더 떨어질 우려가 있다. 트랙스의 디젤엔진은 1.7ℓ가 장착될 전망이다. 국내에 없는 엔진이라 수급과 단가 문제가 제기된다.
한국지엠은 트랙스를 기존에 없는 새로운 세그먼트의 차라고 주장하지만 이미 익숙하게 봤던 기아 카렌스나 쏘울 등과 유사한 차다. SUV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조금 높은 승용차에 가깝다. 소형 승용차와 경쟁해야하는 트랙스를 1940만원∼2289만원에 내놨다.
성공여부는 판매량이 결정짓겠지만 침체 일로를 걷는 국내 자동차 시장 추세와는 어울리지는 않는다. 강력한 경쟁상대로 지목되는 기아차의 신형 카렌스가 오는 2사분기에 출시되고 높은 연비를 자랑하면서도 2000만원대로 가격을 낮춰 출시할 폴크스바겐의 폴로도 이즈음 등장할 예정이다. 국내 자동차 시장은 수입차가 소형까지 적극적으로 가격공세를 하는 상황이다. 더 이상 가격이 오른다면 수입차의 다양한 라인업과 소형차의 직접 경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국내 시장에서의 트랙스 상품성에 대해 아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주 글·사진=이다일 기자 auto@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