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샌드위치 신세 중견기업 성장기반 구축에 앞장”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강호갑(사진)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이하 중견련) 회장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결코 잊지 못한다. 당시 자동차 차체와 새시·금형을 전문으로 생산하던 신영그룹 회장이던 강 회장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최신 생산설비를 도입하려고 이탈리아에서 400억원 규모의 발주계약을 마친 채 주거래은행의 지원을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던 것. 은행의 지원의사를 확인한 뒤 설비도입 계약을 맺었는데, 금융위기가 터지자 대출의 80%까지 중소기업 지원에 할애하라는 정부의 요구를 받고 은행 측은 말을 바꿨다.

“규정상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신영에 400억원을 꿔주면 중소기업에 1600억원을 대출해줘야 하는데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 요지였다. 부도난 기업을 인수해 중견기업으로 키웠더니 중소기업이 아니라고 지원해줄 수 없다는 기막힌 노릇이 또 있을까 싶었지만 강 회장은 항변조차 제대로 못했다.

결국 다른 금융회사를 찾아 백방으로 뛰어 4개월 만에 가까스로 설비자금을 마련했다.

강 회장은 이 일을 계기로 중견기업이 처한 부당한 현실을 고쳐야 한다는 사명감을 품게 됐다. 2010년 수억원의 사재를 털어 중견기업학회를 조직하고, 이사장 자격으로 후원해 중견기업 지원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힘썼고, 지난달 26일에는 중견련 8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사회적인 무관심에 처한 중견기업의 성장기반 구축을 위해 정책과 제도의 뒷받침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중견기업 육성법을 제정하고,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을 개정하는 등 관련법과 제도 개선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중견기업이라는 개념이 법안에 등장한 것은 2011년 7월 산업발전법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중견련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관련 18개 법령에 중견기업이 반영돼 있지 않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그는 “빵집을 비롯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둘러싼 갈등도 상생법에 중견기업을 지원하는 내용이 반영되기만 하면 풀릴 일”이라며 “‘중견기업 적합업종’이라는 개념도 하루빨리 ‘대기업 배제업종’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회장은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은 연구·개발(R&D) 지원규모 등에서 크게 달라 같은 선상에 둬서는 안 된다”며 세분화된 정책을 펴줄 것을 요구했다.

강 회장은 정부 지원을 둘러싸고 중소기업과 경쟁하는 일은 결코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이스라엘의 요즈마 펀드를 이용하면 중소기업 지원자금을 가져오지 않고도 중견기업이 자체적으로 R&D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다”며 “정부가 주도해 이 펀드에 일정액을 출연하면 중견기업도 매칭 형식으로 출연에 나서고 이어 투자자들도 나서는 선순환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이런 뒷받침을 받아 중견기업이 성장하면 일자리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대한민국 전체 기업 수의 0.04%인 1422개의 중견기업이 전체 고용인구의 7.7%인 82만4000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비중이 1%만 되더라도 25배가 더 많은 약 3만5000개의 중견기업이 탄생해 고용효과를 비롯한 국가경제에 큰 공헌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신영그룹 회장인 그는 1999년 부도 난 신아금속을 인수해 품질관리에 혼신을 다한 끝에 국내 4개, 해외 2개 법인을 추가로 설립해 지난해 말 매출 8900억원, 종업원 2900명에 이르는 대표적인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황계식 기자 cul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