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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관저도 사양…청빈과 겸손으로 낮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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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계 이민자 아들…2001년 추기경에 올라
버스 타고 빈민가서 선교…교황 선출 후 일반차 이동
숙박료도 직접 계산 ‘파격’…폐 한쪽 없어 건강 우려도
“나의 형제 추기경단이 (교황을 찾기 위해) 거의 지구 끝까지 간 것 같네요.”

13일(현지시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는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자신이 아르헨티나 출신임을 재치 있게 표현하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려는 이러한 자세는 소탈한 그의 평소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는 평생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한 청빈하고 겸손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가톨릭 보이스’지 킴 다니엘 편집장은 “그는 힘없고 소외받는 계층을 대변하는 목소리”라고 말했다.

14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교황 프란치스코는 선출 후 첫날 공식 업무에서부터 겸손하고 소탈한 면모를 드러냈다. 교황은 이날 성마리아 대성당 방문에 앞서 콘클라베에 들어가기 전 묵었던 호텔에 들러 숙박료를 직접 계산하고 자신의 가방을 건네받았다. 또 성마리아 대성당도 교황 전용 차량이 아닌 일반 차량으로 이동했다. 

프란치스코는 전날 교황에 선출되고 나서도 성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낼 당시 교황의 위엄을 나타내는 붉은 망토를 걸치지 않았다. 또 이날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교통편도 교황 전용차 대신 다른 추기경들과 함께 버스에 탑승했다. 그는 2001년 아르헨티나 가톨릭 교회 최고위직인 추기경이 된 뒤에도 화려한 관저 대신 시내의 작은 아파트에서 음식을 직접 해먹으며 살았다. 운전기사를 두지 않고 버스를 타고 다니며 빈민가를 찾아 시민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눴다.

그는 1936년 12월 17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출신 철도노동자 부모의 5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958년 예수회에 입문했고 산미겔 산호세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1970년대 후반까지 아르헨티나 지방을 돌며 사목 활동을 했다. 1980년 산미겔 예수회 수도원 원장으로 발탁됐고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에 이어 2001년 추기경에 임명됐다.

프란치스코는 가톨릭 교리에 충실한 보수주의자다. 동성결혼과 낙태수술 등을 허용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 반면 경제·사회적 불평등과 부정부패 등 사회 문제에는 진보적인 목소리를 냈다. 2001년 아르헨티나에 경제위기가 왔을 때 가난한 이들을 더욱 빈곤으로 몰아넣는 자본주의를 비판했고, 미혼모 자녀들의 세례를 거부하는 사제들을 위선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가 1976∼1983년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시절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논란으로 남아 있다. 당시 군사정권이 빈민층을 위해 일한 예수회 소속 성직자 2명을 납치한 데 대한 책임으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측근들은 그가 당시 군사정권의 탄압을 받던 반체제 인사들의 도피를 도왔다고 주장한다.

프란치스코는 10대 때 폐 수술을 받은 뒤 수십년 동안 한쪽 폐로만 살았다. 또한 2005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됐을 당시에 비해 두 살밖에 적지 않아 활발히 활동할 수 있을지 우려도 제기된다.

백소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