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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우경화에 열 올리는 건 미래 좌표가 없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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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석학이 말하는 '역사 바로보기'
미야지마 히로시 지음/창비/2만원
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미야지마 히로시 지음/창비/2만원


“이제 일본의 우경화는 위험한 수준으로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일본이 왜 그렇게 위험한 길을 다시 밟으려 하는가인데, 그 최대 원인은 일본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야지마 히로시(宮島博史·65)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겸 도쿄대 명예교수의 언급이다. 미야지마는 2002년 일본 명문 도쿄대 교수직을 버리고 한국 유학을 연구하기 위해 한국의 성균관대로 자리를 옮긴 일로 유명한 진보학자다. 그는 ‘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는 저서에서 이같이 탄식하면서 자국 국민과 정부에 올바른 역사인식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그는 일본 내 진보학자들 가운데서도 한·중·일 3국의 사실관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 부류가 많다고 꼬집는다.

지난 26일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한 일본 중고교 교과서가 통과하면서 한·일 역사 논쟁이 다시 불붙는 상황에서, 때마침 일본인 석학의 ‘역사 바로보기’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일본 역사인식이 왜 이렇게 잘못되었는지 사료를 토대로 인문학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나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같은 일본 내에서 벌어진 참담한 범죄조차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 행태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학술서이지만 학술서 같지 않은 쉬운 문체와 역사적 사건들을 예로 들면서 일반인이 읽어내기 쉽도록 했다.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
미야지마 교수는 일본의 현대 역사인식이 잘못 가게 된 원인 중 하나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13∼1901)를 꼽는다. 현재 일본 1만엔권 화폐 초상화의 주인공인 그는 근대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계몽사상가로 꼽히는 인물. 사립 명문 게이오대 창립자이기도 한 후쿠자와의 역사인식은 정한론, 한국병합론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후쿠자와는 근 1000년간 일본의 인물 가운데 5∼7위를 차지할 정도로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다.

미야지마의 견해에 따르면 후쿠자와는 우선 한국과 중국의 유교를 근본부터 잘못 이해하면서 한·중에 대한 정당한 이해를 방해했다는 것. 후쿠자와는 일본의 근대기 사회질서를 이룬 유교를 혐오했다. 이런 후쿠자와의 인식은 하급 무사로 불우한 생애를 보낸 부친에 대한 추억과 관련이 깊다. 일본 유교가 만들어낸 문벌제도를 ‘부모님의 원수’라고 표현했다. 후쿠자와는 일본 유교와 한국·중국 유교를 동일시하는 우를 범했다. 그러나 한국은 효를 우선시하는 유교적 질서였던 반면 일본은 충을 우선하는 유교였다. 따라서 부자관계보다는 군신관계를 더 중시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근대시기에 서구화에 성공했는데, 서구화에 성공하지 못한 한국 중국은 일본보다 열등하다는 것이다. 미야지마는 이에 대해 “후쿠자와가 한국과 중국 유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라고 비판했다.

미야지마는 그러면서 2010년을 이렇게 맞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1970년대 한국 유학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일본의 한국 침략, 그것을 지탱했던 이른바 식민사관의 문제는 머지않아 극복될 것으로 생각했었다”면서 “그러나 한국 병합을 옹호하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찬성했던 당시 역사인식은 아직도 재생산되고 있다”고 탄식했다.

합동으로 훈련 중인 일본 이지스함들과 일본해군 깃발 욱일승천기.
그는 “현재 (우익정권의) 일본은 경제적으로 앞서가지만 정치·사회적으로는 주변 국가들에 뒤처지고 있다”면서 “아직까지도 군주제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여성 천황을 인정할지 말지라는, 나에게는 만화적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 논의가 계속 이뤄지고 있는 게 일본의 현실”이라고 비판한다. 사회적으로 보아도 한국에서는 2008년부터 호적(적어도 고려시대 이래 천년 이상 지속되어온 것)이 폐지되고 가족관계등록부로 전환했다. 그에 비해 일본은 여성 가장을 인정하는 남녀별성(男女別姓) 논의조차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다는 것.

그는 “일본 사람들이 듣기에 거북한 말을 끊임없이 해온 것은 일본을,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이라면서,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일본이 한국과 중국에 대한 침략행위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반성도 많이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일본·한국·중국의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역사인식에서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