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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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풍운동의 역사

DJ정부때 권노갑 퇴진 요구 ‘천·신·정’
새누리 17대 총선 ‘60대 용퇴론’ 대표적
한국 정치사에서 정풍(整風)의 진원은 늘 초·재선 의원이었다. 정풍운동의 파고에 따라 당내 인적쇄신이 단행되거나 권력지형이 바뀌었다. 정풍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세력 중 상당수는 당의 주류로 올라섰다. 하지만 다시 초선으로부터 쇄신 대상으로 몰리는 역사는 되풀이됐다.

정풍운동의 대표적 사례는 김대중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15대 국회에 들어온 천정배·신기남·정동영(천·신·정) 의원은 민주당(현 민주통합당)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해 자주 회동하며 목소리를 높여왔다. ‘천·신·정’이 정풍운동의 불을 지핀 것은 16대 국회 들어 송영길, 이재정, 정범구, 김성호 의원 등 초선으로 구성된 ‘새벽21’ 모임의 뒷받침을 받으면서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2000년 12월2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당 최고위원 만찬에 참석해 김대중정부 실세인 권노갑 최고위원의 퇴진을 공개 요구했다. 이어 ‘새벽21’이 당정쇄신 건의서를 청와대에 전달해 천·신·정에 힘을 실었다. 결국 권 최고위원은 17일 최고위원직 사퇴를 발표했다.

민주당과 비슷한 시기인 1997년 신한국당(현 새누리당) 초선인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의원은 ‘시월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김영삼정부 마지막 노동법 날치기 처리에 반대하며 여권 지도부 인책을 요구하는 등 당 쇄신을 압박했다. 16대에선 초선 원희룡, 정병국 의원이 재선의 남경필 의원과 손을 잡고 당내 개혁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당시 여당인 민주당의 ‘천·신·정’에 빗대 ‘남·원·정’으로 불렸다.

새누리당에서 성공했던 정풍운동은 17대 총선을 앞둔 2003년 9월 소장파 의원발 인적청산론이었다. 애초 ‘60대 용퇴론’에서 출발한 인적쇄신은 5·6공 출신 영남 중진 의원으로 타깃이 확대되면서 세대교체 요구가 비등해졌다. 결국 17대 총선 과정에서 최병렬 대표를 비롯한 현역 60명을 물갈이하는 계기가 됐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시절인 18대 국회에서는 김성식, 김성태, 황영철 의원 등이 중심이 된 ‘민본21’이 당내 보수화를 우려하며 개혁적 담론을 주도했다. 이들은 대선 전인 2011년 말 당의 이념적 좌표를 중도보수로 정하고 이를 위한 지도부 교체론을 주장해 홍준표 대표 체제의 막을 내리고 박근혜 비대위체제를 출범시키는 발판을 마련했다.

김달중·박세준 기자 da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