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세렌디피티’(serendipity)란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우리말로는 ‘행복한 사건’, ‘즐거운 경이’, ‘우연한 발견’ 등으로 번역된다. 하지만 세렌디피티는 영국의 한 번역회사가 번역이 가장 어려운 단어로 선정한 바 있듯 잘 이해되기 힘들다고 간주되는 단어다. 18세기 중반부터 문학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이 단어는 ‘오랜 노력 끝에 그동안의 고생을 보답하듯’ 뜻하지 않게 좋은 것을 발견하거나 결과를 얻는 경우를 나타내는 것이 정확한 의미다.
최근에는 의약분야에서 세렌디피티란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비아그라가 협심증 치료용으로 연구되다가 부작용으로 나타난 현상을 성기능 장애 치료로 활용한 것은 잘 알려진 사례다. 1908년 시카고에서 카네이션이 꽃을 못 피우는 원인을 온실의 에틸렌 조명에 있음을 발견하고, 에틸렌 가스가 식물이나 동물에 해가 되는지에 대해 수행한 과학자의 연구는 효과적인 수술용 마취제를 발명하게 한다. 198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SF) 해럴드 바머스 박사의 세포성 종양유전자의 발견은 뇌 관련 종양이나 뇌과학에 크게 기여하고 있지만, 처음 연구의 목표는 바머스 박사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유방암 연구에 있었다. 반면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와인버그 박사의 쥐의 뇌종양에 관한 연구는 결과적으로 사람의 뇌종양보다는 유방암 치료에 크게 기여하게 되는 또 다른 세렌디피티다.
세렌디피티는 다른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쉽게 찾아진다. 진공관에서의 에너지 흐름을 연구하던 물리학자가 발견한 엑스레이가 영상의학과 진단장비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1840년대 찰스 굿이어가 생고무 조각을 난로에 떨어뜨리는 사고로 현재와 같이 단단한 자동차 타이어가 가능해졌다. 연구자가 의도하지 않던 불순물을 시험관에 방기했다가 나중에 발견한 변형을 계기로 나일론이 만들어졌고, 스마트폰이나 TV의 디스플레이에 널리 쓰이고 2000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전도성 고분자는 도쿄공대의 연구에 참여하던 외국인 연구보조원이 실험지시서의 단위를 잘못 읽어 특정 화학물질을 지시보다 1000배 더 투입한 사고 덕분에 발명이 가능했다.
이와 같이 과학계의 세렌디피티가 많은 것을 인정하는 사건이 1991년 발생한다. 미국 특허시스템 200주년을 기념하는 이 회의에 참가한 과학자, 발명가, 공무원 등은 그동안 믿어오던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주장보다는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라는 주장이 더 진실에 가깝다는 선언을 했다. 즉, 천재적인 과학기술자의 창의성은 평범한 사람의 실용적 요구를 앞서기 십상이고, 과학기술자의 창의성은 본인의 의도보다도 앞서거나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 더 유용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연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 안 될 것이다. 바머스가 탁월한 유방암 학자가 아니었다면 뇌종양에 유용한 발견인지도 알 수 없었을 것이고, 굿이어가 고무를 딱딱하게 하는 실험을 거듭하고 있지 않았었다면 난로에 고무가 떨어지는 사건이 타이어를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진리를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세렌디피티라는 단어가 단순히 사고나 우연보다는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과학기술의 세렌디피티의 바른 이해가 가능하다. 즉, 평범한 일반인보다는 끊임없이 연구를 하는 현대의 ‘영웅’이고 ‘주인공’인 과학기술자에게 세렌디피티가 나타나고 성실히 연구를 했던 것에 대해 그동안의 고생을 보답하듯 응답하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세렌디피티란 진리를 위해 불철주야 자신을 헌신하는 현대의 영웅에게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는 운명의 선물이다.
이희상 성균관대 교수·기술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