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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준의 7080사람들] 펑키 천재 '사랑과 평화' 리더 최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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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대중음악의 피를 이어받다

 

‘사랑과 평화’는 1978년 발표한 1집 앨범 ‘한동안 뜸했었지’로 널리 알려진 그룹사운드다. 이어 2집 앨범(1979) ‘장미’ 3집 앨범(1988) ‘울고 싶어라’로 팬의 사랑을 흠뻑 받았다. 이후 6집 앨범까지 냈고, 200여곡을 발표했으나 귀에 익은 곡은 많지 않다. 가수로 데뷔한 뒤 서너곡 히트시키고, 속칭 ‘한물 간’ 가수는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사랑과 평화’는 불과 3곡을 히트시키고도 지금까지 그룹사운드의 대명사로 추앙받고 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사랑과 평화’의 원년 멤버 최이철이 있기 때문이다.

최이철은 보컬보다 기타리스트로 더욱 명성을 떨친 가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우연히 만져 본 기타, 17세 때 미8군 그룹 오디션에 B등급으로 합격한 이후 미8군과 라이브 무대 공연으로 바쁘게 살았다. 그러다가 1978년 발표한 ‘한동안 뜸했었지’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952년 생이니 27세가 되어서야 대중에게 존재감을 부각시킨 것이다. 하지만 다소 늦게 얻은 명성과 달리 최이철은 펑키 음악 부문에서 이미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조붓한 체구와 사근사근한 말투에서 정이 담뿍 묻어나는 가수 최이철을 강상준의 그리운 얼굴이 만났다.

- ‘한 동안 뜸했었지’는 어떤 풍의 노래인가요.

“펑키 곡입니다. 22살 때 펑키 음악을 처음 듣고, 진짜 음악을 만났다고 생각했어요. 이후에는 줄곧 펑키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있죠.”

- 펑키는 어떤 종류의 음악인가요.

“펑키는 본래 재즈 용어로 ‘흑인의 체취’라는 의미의 은어입니다. 흔히 흑인적인 감각, 선율 등을 가리켜 ‘펑키한 연주’라고 하는데, 1960년대 미국 흑인 댄스음악의 한 장르를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죠. 스타카토로 끊는 듯한 느낌의 댄스를 일컬을 때도 사용되는데, ‘한 동안 뜸했었지’를 보면 스타카토 느낌이 들잖아요. 펑크 음악은 한 음을 기본으로 싱코페이션이 많이 들어간 베이스, 강한 관악기, 강조되는 리듬 기타, 소울이 강한 보컬 등이 특징입니다.”

- 펑키가 재즈 용어라면 재즈에도 조예가 깊겠군요.

“사실 우리 집안이 3대째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은 처음 하는 건데, 조부께서 평안도 용천에서 피아노를 치셨어요. 용천에서는 우리 집안 땅 밟지 않고는 다닐 수 없다고 할 만큼 지주였는데, 조부께서는 교회에 다니면서 피아노를 하셨어요. 6.25 전쟁이 발발한 뒤 장남인 제 부친과 차남, 작곡가 길옥윤씨 3명이 함께 월남했어요. 월남할 때 아버지는 트럼펫을 들고, 길옥윤씨는 색소폰을 들고 왔다고 했어요. 길옥윤씨가 1927년 생으로 아버지보다 3살 아랩니다. 대중음악의 거장 세 분이 함께 월남한 셈이죠.

저는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나 100일째 되는 날 상경했는데 어린 시절 눈만 뜨면 재즈를 들었어요. 아버지와 삼촌이 미8군에서 재즈를 연주했거든요.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나중에는 아예 재즈 음악을 통째로 외우게 됐어요. 참고로 미8군에서 재즈는 주로 장교들이 즐기고, 록은 주로 사병들이 좋아합니다.”

- 결국 음악가의 피를 이어받으신 거군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건 맞다고 봅니다. 한 번도 레슨 받지 않고 기타를 친 걸 보면 그래요. 같은 피를 이어 받았는데 형하고는 좀 달랐어요. 중학교 1학년 땐가 형이 기타를 사서 쳤는데, 형이 없는 사이 일주일 연습했더니 형이 외려 저더러 가르쳐 달라고 하더라고요. 어릴 때 날마다 재즈를 들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됐을 겁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할 생각이셨나요.

“제가 4~5세 때 꿈을 말할 때 어른이 되면 트럼펫을 불겠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6학년 때 벽에 걸린 사촌 형 기타를 처음 만져봤죠. 그러다가 중학교에 입학해서 어머님께 졸라 기타를 사서 혼자 쳤어요. 한 번도 배우지 않고 혼자 해봤는데 잘 되더라고요. 중학교 3학년 때 동네 형들하고 4명이 모여서 연주를 시작했어요. 기타 2명, 베이스기타 1명, 드럼 1명이었죠. 당시 마포에서 길거리 연주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오디션을 보라고 하더라고요. 운인지, 실력인지 바로 합격했어요.”

- 당시도 오디션이 있었나요.

“우리나라 그룹사운드는 미8군이 모태였어요. 음악께나 한다는 사람은 모두 미8군에서 노래를 하고 연주를 했으니까요. 패티김, 하춘화, 조용필, 인순이, 조영남 등 미8군 출신이 한국의 대중음악을 주도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미8군에 들어가려면 ‘유니버설’이라는 회사에서 오디션을 봐야 했어요. 유니버설은 요즘으로 말하면 연예기획사인 셈이에요. 유니버설에서 오디션을 봤는데 B등급을 받고 합격했어요. 동네 어설픈 연주자 4명이 B등급을 받았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어요. 이 등급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는데, A등급 받은 팀도 연습 게을리 하면 바로 D등급으로 추락할 만큼 심사가 엄격했어요.”

- 말하자면 본격적인 음악인생이 미8군에서 펼쳐진 거로군요.

“하루는 용산에 있는 유니버설에 갔다가 문틈으로 록의 대부 신중현 씨를 보게 됐어요. 30세 정도였는데 대단했어요. 문을 걸어 잠그고 며칠씩 연습한다는 말을 들었죠. 천재라도 연습 없이는 안 된다는 걸 알았죠. 미8군에서 연주를 하다가, 고고클럽에서 연주를 했어요. 고고는 1970년대 초반부터 유행이 시작됐는데, 무교동의 ‘싼다 나이트클럽’의 ‘쉬식스’가 유명했죠. 돈은 고고클럽이 더 많이 벌 수 있는데, 펑키를 하는 저로서는 짜증이 나더라고요. 왜냐하면, 미국인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데, 한국 사람들은 춤에 맞춰 음악을 연주해야 하는 거예요. 기계도 아니고, 정말 재미없는 일이었어요. 펑키 음악은 22세 때 처음 들었는데 진짜 음악을 만났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후에는 이 길로 매진했던 겁니다.”

- 오디션에 합격한 뒤에 공연료를 많이 받았다고 하던데…

“유니버설 오디션 B등급에 합격하니까 한달 급여가 2만2500원이었어요. 엄청난 돈을 받으면서 미8군에서 공연을 하니 공부할 틈이 없었죠. 오디션에 합격한 이후 유니버설은 우리 4명 연주자에 3명을 더 붙여서 팀을 꾸렸어요. 남녀 가수 각 1명, 무용수 1명 합쳐서 도합 7명이 한조를 이뤄 미군부대로 공연을 다니느라 학교 다닐 틈이 없었어요.”

- ‘한동안 뜸했었지’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1978년 봄이었는데 하루는 명동 퍼시픽호텔 지하 나이트 클럽 ‘무겐’으로 이장희 씨가 찾아왔어요. 제가 거기서 재즈를 연주하고 있었거든요. 이장희 씨는 명동에 있는 로열호텔 나이트 클럽에서 공연을 할 때 자주 만나 친했어요. 이장희 씨가 제게 ‘네가 스타 되는 걸 한 번 보고 싶다. 레코딩 해보지 않을래’하고 말씀하셨어요. 그해 가을 마침내 음반이 나왔죠.”

- ‘한동안 뜸했었지’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요.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비아냥거림이 동시에 있었어요. 음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노래는 완벽한 펑키 음악이에요. 노랫말도 스타카토를 넣어 펑키에 맞게 만들었지요. 방송에서 3번 노래가 나간 뒤 팬이 얼마나 저를 찾던지 정신없이 두어 해를 보냈어요. 물론 비아냥거림도 있었어요. 통기타 음악이나 고고 음악에 익숙한 팬들이 난데없는 펑키음악을 듣고는 ‘무슨 바가지 엎어놓고 긁는 소리를 내느냐’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 얼마 전 KBS1TV 7080 프로그램에 사랑과 평화가 출연했는데 최이철 씨 모습이 안 보이던데.

“가슴 아픈 얘긴데, 한 때 같이 했던 ‘사랑과 평화’ 멤버 한 분이 ‘사랑과 평화’ 상표 등록을 했어요. 그러고는 저더러 ‘사랑과 평화’ 이름으로 공연하지 말라고 내용증명도 보내고, 항의도 했어요. 특허 쪽에 물어보니 줄곧 이 이름을 써왔던 사람은 상표 등록과 무관하게 쓸 수 있다고 하는데, 싸우기 싫어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제가 원년 멤버고, 모두 제가 만든 노래인데 이름만 상표 등록했다고 그의 것이 되겠습니까. 방송국에서도 나름 사정이 있겠죠. 그런데 꼭 나중에 제게 또 전화를 해서는 원년 멤버가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요. 가끔 화날 때도 있지만 조용히 넘어가려고 합니다.”

- 아픈 상처가 따로 없군요. 요즘 활동상황은.

“요즘엔 명지전문대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칩니다. 처음엔 기타만 가르치다가 요즘엔 앙상블로 다 가르칩니다. 이제 60세가 넘었으니 후진을 양성해야지요. 월 3~4회는 공연을 합니다. 여름, 가을에는 공연이 특히 많아요. 록 페스티벌에 참가하기도 하고, 소극장 공연, 행사장 공연도 합니다. 바쁘게 삽니다.”

-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제가 펑키 음악을 하지만 때로는 편안히 펑키 음악을 듣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안 돼요. 뮤지션이 많은데 제가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눈에 띌만한 그룹이 없어요. 기껏해야 외국 DVD나 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남들이 다 가는 길도 좋지만, 자기만의 길을 가는 젊은이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