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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살람, 중동] 〈22〉 내전의 상흔 여전한 도시, 레바논 베이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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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삶은 계속된다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가기 위해선 버스터미널에서 국경을 넘는 버스를 타야 한다. 그 버스를 타면 베이루트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다. 버스터미널에서도 흥정은 가능하다. 왜냐하면 가는 버스가 워낙 많아 얼마든지 골라서 탈 수 있기 때문이다. 레바논 국경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거리다. 국경에서부터 베이루트까지 또 두 시간이 걸린다. 출발할 때에는 그냥 가까운 거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계산하지 못한 변수가 국경에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시리아 비자는 멀티 비자가 아니라서 다시 시리아로 들어올 때 또 비자 발급 수수료를 내야 한단다. 그건 출국하는 국경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문제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시내의 고요한 거리. 한때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베이루트는 유럽풍 건물이 즐비하다.
그리고 시리아 국경을 지나 레바논 땅에 들어선다. 레바논은 이틀 동안만 쓸 수 있는 통과비자밖에 안 된단다. 일주일짜리 통과비자가 나온다고 알고 갔는데 정작 국경에서는 “48시간밖에 안 된다”고 강력히 말한다. 나중에 베이루트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인데, 국경마다 통과비자를 주는 기간이 다르단다. 하지만 그것 또한 변수가 너무 많다. 변동이 수시로 생기기에 베이루트 여행을 더 길게 하고 싶으면 먼저 잘 알아보고 가야 한다. 나는 어차피 오래 머물 생각도 아니었기에 48시간 안에 다시 시리아로 돌아오기로 작정하고 베이루트로 향한다.

이래저래 국경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한 탓에 베이루트에 도착했을 때 이미 밤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 시간에 터미널에 도착했기 때문에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숙소를 찾으며 너무 오래 헤매는 바람에 자정이 다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빈방이 있는 숙소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여행객이 많은 탓이다. 이번 이동은 별로 힘들지 않았지만, 국경을 넘는 일은 언제나 나를 피곤하게 한다. 게다가 짐을 메고 숙소를 찾느라 돌아다닌 탓에 지쳐 금세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베이루트에서 나한테 허용된 48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일찍 일어나 나가본다. 항상 여유롭게 기간을 두고 머물렀던 내게 짧은 일정은 어색하기만 하다. 또한 그것은 마음의 여유도 없게 만든다. 그래서 알차게 보기 위해 서두르기로 했다.

유럽풍의 깨끗한 건물들은 평화롭게만 보였다. 하지만 레바논이 그렇게 평화롭기만 한 나라는 아니잖은가. 건물들을 자세히 보면 총알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 상처들 위에 대충 페인트를 덧칠해놓았을 뿐이다. 심지어 구멍 뚫린 나무 초소에는 핏자국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평화롭게만 보이는 길거리에도 상처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며 몹시 씁쓸하게 만든다. 전쟁으로 무너지고 깊은 상흔이 생긴 이 도시는 그래도 굳건히 다시 살아난다.

거리를 걷다 보면 너무 고요하다. 하지만 무장한 경찰과 군인들, 막아놓은 철조망들이 잠재된 두려움을 갖게 한다.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대하니 여행의 맛이 싹 가신다. 여행할 만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베이루트의 명물인 비둘기바위 부근의 푸른 지중해로 풍덩 뛰어드는 레바논 어린이들.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지중해의 바다는 아름답기만 했다. 비둘기바위라는 유명한 곳을 가본다. 나는 현지 주민들과 같이 낚시를 했다. 낚시를 하고 있는 이에게 다가가니까 나한테도 낚싯대를 하나 건넨 것이다. 큰 바다 낚싯대는 들고 있기에도 버거운 관계로 내가 잡은 건 한 마리도 없었다. 대신 고동을 가득 잡았다. 아이들은 한쪽에서 다이빙을 한다. 그건 정말이지 제대로 된 다이빙이었다. 절벽에서 그냥 뛰어내리는데, 그 장면이 너무 시원하고 통쾌해 나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게 만든다. 실제로 절벽 위에 서 봤지만, 도저히 뛰어내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정말 한 번쯤은 뛰어내려 보고 싶었는데, 막상 그 위에 서니 무서움밖에는 없었다. 아찔하게 뛰어내리는 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짧은 일정을 마치고 다시 시리아로 돌아가는 국경은 지금까지의 여행 중에서 가장 오래 걸렸다. 그만큼 힘든 국경이었다. 시리아의 홈스까지 가는 버스인 줄 알고 탔는데 알레포까지 간단다. 결국 알레포까지 한 번에 가는 셈이 되었다. 다마스쿠스에서 레바논으로 가며 넘는 국경과 레바논에서 알레포로 가며 지나는 국경은 확연히 다르다. 알레포는 시리아와 터키의 접경지대에 있어 지도상으로 보면 시리아의 북쪽에 해당한다. 내가 탄 버스는 좋고 큰 버스로 사람이 꽉 찼다. 그 버스 안의 수많은 사람이 나 때문에 많은 시간을 지체해야만 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시리아 국경을 넘고 있었고, 그 이유는 대부분 터키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는데 시간이 지나도 절대로 줄지 않는다. 시리아 비자 하나 받는 줄이 그렇게 끝이 없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 줄을 만만하게 봤다. 20명 남짓 되는 사람들 뒤에 서 있었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두 시간이 지나도 줄지 않았다. 오히려 더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새치기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한 사람이 하나의 비자만 받고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줄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엔 나의 버스 차장이 “더 이상 못 기다린다”면서 “버스가 출발한다”고 말했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 바로 그들의 ‘인샬라’다. 그 한 마디에 차장은 웃으면서 버스로 돌아가 더 기다려줬다.

시리아도 통과비자를 받았는데 교묘하게도 달러로 지불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시리아 돈으로 하면 환율 차이 때문에 더 손해를 보게 된다. 시리아 비자 발급 수수료가 손으로 직접 쓴 큰 칠판 같은 곳에 붙어 있다. ‘코리아(Korea)’라는 글자 옆에 ‘공짜(Free)’라고 적혀 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싶어 다시 쳐다보니 역시나 ‘코리아’ 밑에 작은 글씨로 ‘북쪽(North)’이라고 적혀 있다. 시리아는 북한과 무비자 협정을 맺고 있었다. 지치고 힘들고 무기력해진 상태로 버스에 올랐다. 오래 기다려 준 버스 안의 시리아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해줬다. 지친 나로 하여금 미소를 되찾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너무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홈스까지 가는 요금을 내고 표를 끊은 내가 “알레포까지 간다”고 말하니, 버스 안의 사람들은 차장에게 추가 요금을 받지 말고 그냥 태워주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차장은 그런 성의도 무시하고 끝까지 요구해 나한테 돈을 받아냈다.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버스 안의 모든 사람은 마치 수학여행이라도 가는 고등학교의 한 반 학생들 같았다. 모든 것을 허용해주지 않는 선생님의 역할은 버스 차장 몫이었다. 학생 역할을 맡은 우리 모두는 그저 즐겁게 떠들고 놀면서 알레포로 향했다.

온몸을 가린 차도르 차림의 레바논 여성들이 비둘기바위 근처로 나들이를 나왔다.
휴게소에서 케밥이라도 하나 사먹어 다행히 그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점심 때 출발한 버스가 알레포에 도착하니 어두컴컴한 밤이 되어 있었다. 숙소를 찾는 일은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나에게는 버겁다. 국경 근처라서 작은 숙박업체가 많지만 모두 빈방이 없단다.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든 상황이기에 또 옥상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시리아의 도시 첫날은 옥상텐트가 정석이라도 되듯 나는 또 옥상 텐트 안에서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이 든다.

알레포는 터키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자 거점 도시이다. 알레포는 터키로 가는 버스가 많고, 국경에서도 가깝다. 그래서 많은 여행객과 많은 시리아 사람이 알레포에 모여 있다. ‘여기가 시리아의 마지막 도시구나’라고 생각하니 요르단·레바논·시리아에서 겪은 모든 일이 떠오른다. 긴 일정을 보낸 다른 나라들과 달리 비교적 빨리 이동한 세 나라를 뒤로하고 이제 터키로 떠날 것이다. 떠난다는 생각을 하면 그 나라 사람들이 신기할 만큼 친절하게 다가온다. 알레포에서 시리아 사람들과 친분을 쌓은 건 어쩌면 나의 심리적 상태 때문일 수도 있다. 떠난다는 아쉬움을 가지고 사람들과 마주하니 더 애틋해져서 그럴지도 모른다. 어쨌든 시리아 사람들은 내게 ‘친절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옥상의 텐트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하늘과 맞닿아 있어 좋다. 5층을 걸어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는 점만 빼고는 완벽했다. 그중에서 가장 좋은 건 밤하늘의 별들이었다. 별을 보며 잠들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에서 별을 이불 삼아 잠들었던 소년·소녀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시리아에서의 마지막 날 나도 소녀가 된 것처럼 별을 이불 삼아 잠이 들었다.

여행작가·‘중동을 여행하다’ 저자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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