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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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사망자 500명 넘어서

입력 : 2013-05-05 22:31:02
수정 : 2013-05-05 22: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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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착취·정경 유착·다국적기업 도덕불감증이 빚은 참극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근 사바르에서 ‘라나 플라자’ 붕괴사고가 일어난 지 10여일이 지났다. 이번 참사의 상흔은 깊고도 넓다.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 번 돈을 시골 집에 부쳤을 수백명의 젊은 여공들이 꽃다운 목숨을 잃었다. 시신이라도 수습해볼까 온종일 건물 잔해 더미를 파헤치던 수백명의 가족과 친척들은 밤새 코를 찌르는 시체 냄새에 또다시 목놓아 운다.

실낱 같은 희망마저 사라지자 이들 가슴에는 분노만이 남았다. 당장은 벽이 쩍쩍 갈라지는데도 작업을 강행한 건물주와 그 같은 공장주들을 비호한 정치권을 향하고 있다. 노동인권 단체들은 방글라데시의 만연한 노동착취와 인권탄압을 방조한 미국과 유럽의 다국적기업들에게도 참사의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보다 나은 노동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앞길은 그리 순탄치 않아 보인다.

◆방글라데시 최악의 산업재해


월 38달러(약 4만1600원)에 불과한 저임금과 살인적인 초과근무, 최악의 근무환경 탓에 각종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방글라데시에서 역대 최악의 산업재해가 일어났다. 라나플라자 붕괴사고 사망자가 500명을 넘어섰다. 5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사고 현장 수습을 총괄하는 군 관계자는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547명”이라고 밝혔다. 사고 수습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희생자는 더욱 늘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방글라데시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만연한 부패, 다국적기업의 도덕불감증이 빚어낸 참극이라고 입을 모은다. 1차 책임자는 건물주 무하마드 소헬 라나(30·구속)다. 그는 사고 전날인 지난달 23일 건물 벽에 금이 갔는데도 “안전하니 작업을 계속하라”고 지시했다. 안전을 우려한 일부 직원이 출근하길 꺼리자 해고하거나 수당을 깎겠다고 위협했다. 애초 5층짜리로 허가된 이 건물은 8층으로 무단 증축된 데 이어 1개층을 더 올리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행정당국도 참사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위험한 작업장에 대한 안전관리 감독에 소홀했고 불법 증축도 막지 않았다. 5400개 의류 공장주 상당수는 단속 정보를 미리 빼내 직원들을 교육시키거나 시설물을 갖춰놓는다고 현지 주민들은 전했다. 단속에 걸려도 벌금 13달러만 내면 된다.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HRW) 측은 “다카 일대 10만개 공장의 보건·안전 관리 실태를 감독하는 감사관이 고작 18명뿐”이라며 “노동법과 산업안전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경 유착도 참사의 요인

더 큰 문제는 정경 유착이다. 방글라데시의 의류품목 수출액은 연간 191억달러(약 21조원)로 전체 수출액(243억달러)의 80%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의류 수출국으로 올라선 데는 방글라데시 의류공장주 모임 격인 ‘의류제조·수출협회’(BGMEA)에 대한 정부의 온갖 특혜와 400만 의류노동자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주효했다.

의류생산업자들은 수출과 원자재 수입에서 면세혜택을 누린다. 안전사고가 나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방글라데시 당국 공식 집계에 따르면 2005년 이후 화재·붕괴 등 각종 안전사고로 숨진 이는 1000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들 사고 때문에 처벌받은 업자는 1명도 없다. BGMEA가 정치권의 주요 자금줄이기 때문이다. 일부 업자는 아예 정치권에 진출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 의원의 10%가 실제 의류공장을 소유하고 있다. 이번에 구속된 라나 역시 집권당 아와이연맹의 고위간부다.

사용자 비호에 앞장선 방글라데시 정부는 ‘수출 역군’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다뤘다. 가격 경쟁력을 이유로 최저임금은 중국의 8분의 1, 베트남의 2분의 1 수준에서 계속 동결됐다.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집회는 무자비하게 진압됐고 노동조합 운동은 철저히 와해됐다. 지난해 4월 다카 외곽에서는 노동조건 개선 및 임금 인상 운동을 펼치던 아미눌 이슬람이 고문당한 후 살해된 채 발견됐다.

◆교황 “노예노동 근절해야”


이번 참극은 방글라데시의 내부 문제에서만 비롯한 것은 아니다. 방글라데시의 노동탄압 및 열악한 근무조건을 사실상 묵인한 다국적기업의 직무유기도 한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영국 프라이마크나 미국 월마트 등 대형 유통체인과 베네통과 갭 등 유명 의류브랜드들은 유례없는 경기불황을 맞아 최단 기간 최저가로 제품을 댈 수 있는 방글라데시로 몰렸고 이곳의 열악한 노동조건 및 안전시설에 관해서는 눈을 감았다.

BGMEA 관계자는 “바이어들은 종종 가격은 그대로 유지한 채 물량을 늘리길 원한다”며 “제때 물량을 대지 못하면 구매선을 인도나 미얀마 등 다른 경쟁국으로 옮기겠다고 협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방글라데시에 제품 생산을 맡기되 중간에 뉴웨이브 같은 유통회사를 끼워 구매하는 방법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논란을 비껴갔다. 또 방글라데시에서 안전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직접 책임이 없다며 아예 제품 공급선을 인도와 터키, 캄보디아 등으로 옮겨버린다. 로이 라메시 찬드라 다카무역노조 위원장은 “이번 참극은 사고라기보다 이윤이라는 이름의 살인”이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정부의 인권탄압과 글로벌기업들의 ‘비윤리적 경영’에 대한 비판 대열에는 교황도 가세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지난 1일 주례 알현에서 방글라데시 참사에 대해 “노예노동과 같은 근무환경이 부른 참사”라고 규정했다. 이어 “회사 재정을 이유로 근로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거나 일감을 주지 않으며 이윤만을 좇는 것은 하느님에게 반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