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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소외서 탈출하려면… 해방 후 도시 빈민의 삶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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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폐희’
이념이나 종교에 앞서 생업이 있다.

“억압, 착취, 기만, 학살. 무지한 민족에게 돌아오는 것은 이것뿐”이라고 외치는 원칠에게 버스에서 추억의 음반을 팔며 생계를 잇는 원팔은 “당장 배고픔에 어떡하란 말이냐. 우선 나부터 살고 봐야지”라며 대든다.

“그 생각을 버려야 해. 독립 외치던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 땅굴(방공호) 속에는 밥을 굶는 사람들이 있어. 딸을 팔아 끼니를 해결하려는 사람도 있고.”(원칠)

“세상 사람들이 다 너 같은 줄 아니?”(원팔)

입씨름하던 둘은 결국 뒤엉켜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이때 배경음악으로 영화 ‘러브스토리’의 주제곡 ‘스노 플라이’가 잔잔하게 깔린다. 싸움의 맹독성은 이내 중화되고 만다.

국내외 유명 작품을 해체·재구성하는 대담한 연출로 사회적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한 김현탁 연출가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자신만의 미학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 같은 연출 성정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대목은 또 있다. 스타의 삶을 꿈꾸는 옥매의 딸 복순이 발걸음을 내딛을 때도 그의 찬란한 기지는 다시 한번 발휘된다. 노동의 가치와 진취, 사회 개혁의 상징이던 ‘붉은 깃발’이 어느새 복순을 위한 ‘레드 카펫’으로 바뀌는 것이다. 순간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장미빛 인생’이 흐른다.

1948년 1월 초연된 김영수 작가의 ‘혈맥’이 연출가 김현탁의 손을 거쳐 6월 2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관객을 맞는다. 광복 직후 ‘성북동 방공호’를 배경으로 도시빈민의 피땀 어린 삶과 현실 극복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았다. 초연 이후 여러 차례 재공연됐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전회 매진 기록을 세우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1940년대 우리의 삶을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인정받아 중등과정 교과서에도 실렸다.

광복 후 도시빈민의 궁핍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린 ‘혈맥’은 무대를 시내버스 내부로 구성하고 등장인물은 승객으로 묘사한다.
극은 거북이·원칠·원팔·털보·옥매·복순·어머니·한씨·백옥희 등의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가난과 소외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몸부림을 그린다. 자식을 유학 보내고 강아지에게 의지하며 사는 털보, 딸을 기생으로 만들고자 했던 옥매, 스타의 화려한 삶을 꿈꾸는 옥매의 딸 복순, 고학력 실업자로 장사의 길을 택하려는 거북 등이 주인공이다.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닌 버스 안 사람들의 사연을 골고루 담아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박태경 이진성 김미옥 최수빈 염순식 오성택 등 출연. 평일 오후 7시30분, 토 오후 3시·7시, 일 오후 3시.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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