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 도발’이 끝도 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중 최근 일본의 아베 총리는 미야기현 히가시마쓰시마(東松島)에 있는 항공자위대를 방문해 ‘731’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쓰인 곡예비행단 연습기의 조종석에 앉아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한 바 있다. 이 사진을 본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국민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비행기에 찍힌 ‘731’이라는 숫자는 과거 생체실험으로 크게 악명을 떨쳤던 일본 관동군 산하 세균부대의 부대번호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중국 하얼빈시 외곽에 있는 구 731부대 관련 유적과 전시관을 몇 차례 가보았으며 아직까지도 그 충격과 공포를 잊을 수 없다. 현재 731부대에서 사람이 아닌 ‘마루타(丸太·통나무)’로 분류돼 생체실험 등으로 희생된 중국 몽골 소련(현 러시아) 한국 구미(歐美) 사람은 대략 3000여명, 많게는 8000여명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신원이 파악된 한국인은 10여명에 불과하며, 구체적인 인적 사항을 알 수 있는 한국인은 5∼6명에 지나지 않는다. 2005년 중국에서 공개한 731부대 관련 자료에서 한국인 4명의 신원이 파악돼 우리의 이목을 끌었다. 1939년 6월 하얼빈의 향방(香坊) 부근에서 25명의 한인 중국인 항일운동가들이 체포돼 독극물 주사 주입으로 피살됐다는 기록도 있다.
731부대 전시관에는 참혹한 생체실험을 저지른 일본군의 만행을 보여주는 흔적이 잘 남아 있다. 또 당시 실험에 관여했던 일본군 병사가 과거 사실을 인정하고 참회하는 내용의 글도 전시돼 있다. 그중에는 당시 731부대에서 제작한 생화학무기를 일본군이 항공기로 중국 등지에 살포하는 장면도 있다.
한국과 중국은 19세기 말∼20세기 전반까지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로 엄청난 희생을 치렀으며 731부대는 그 한 예에 불과하다. 한국의 경우 일본군의 동학군과 의병 학살, 1919년 3·1운동 탄압, 1920년 중국 연변지역에서 일으킨 경신참변(일명 간도참변), 1923년 관동대지진 때의 한국인 피살, 1930년대 중국동북지방 독립운동 과정에서의 수많은 한국인 피살 등 인명피해를 입었다. 중국 역시 1894∼1895년의 청일전쟁과 1931년의 만주사변(9·18사변), 1937년 일본의 중일전쟁 도발과 남경대학살 등으로 엄청난 피해를 받았다. 많은 한·중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돼 참혹한 생활을 했으며 남성도 강제징용돼 전쟁터로 끌려갔다.
과거 침략전쟁의 처참한 피해를 입은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에 아베 총리의 행동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일본의 지도자가 과거 군국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일본제국주의의 피해국은 근현대 시기 일제의 침략과 만행 관련 자료의 공동 조사와 연구, 활용 등을 통해 일본 정치지도자와 우익세력의 발호와 망동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의 증언 채록, 일본의 침략과 이에 대한 저항, 피해조사 등의 공동연구와 대응이 시급한 실정이다.
아직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 정치지도자와 정부, 일본 국민이 가해자로서 자신들의 잘못을 진솔하게 인정하고 반성하며 그러한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할 때 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의 화해가 이룩되며 평화와 안정이 자리 잡을 것으로 믿는다.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