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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60주년] ③ 정전협정 어떻게 체결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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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공방전… 양쪽 모두 큰 피해
美, 또 세계대전 번질라 노심초사
이승만, 포로 석방 ‘벼랑끝 전술’에
美, 전격 한미 상호방위조약 합의
1953년 7월27일 오전 10시 판문점 회의장.

동측 출입구로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 미 육군 중장 일행이 등장했고, 반대편 입구에선 남일 북한군 대장 일행이 입장했다. 양측은 간단한 눈인사나 악수도 나누지 않은 채 무표정하고 차가운 얼굴로 국어·영어·중국어로 된 전문 5조 63항의 협정문서 9통과 부본 9통에 서명했다. 회담 개시 불과 12분 만에 서명작업을 모두 마친 양측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잠시 시선을 마주했을 뿐 입장 때처럼 한마디 말도 없이 곧바로 퇴장했다. 이로써 3년 1개월 2일, 1129일 동안 지속된 6·25전쟁이 정전(停戰)에 돌입했다.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대표 윌리엄 해리슨 중장(왼쪽 테이블)과 남일 북한인민군 대표(오른쪽 테이블)가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정전협정 배경

유엔군과 공산군이 정전협정에 서명한 데는 6·25전쟁에서 누구도 확실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50년 6월25일 인민군은 기습남침과 함께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왔다. 낙동강까지 후퇴한 국군은 7월5일 유엔군의 참전으로 차츰 기력을 회복한 뒤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전세를 뒤집었다. 유엔군과 국군은 10월9일 38선을 돌파한 데 이어 10월26일 압록강변 초산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조국통일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중공군의 개입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1951년 1월4일 서울을 다시 내줬다가 3월 중순쯤 재탈환한 뒤 지금의 휴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의 장기 공방전을 펼쳤다.

이는 양측 모두 원하지 않은 결과였다. 당초 ‘3주 내 승전’을 목표로 했던 북한은 전쟁의 장기화로 물자와 식량이 바닥난 상태였으며, 미군도 또 다른 세계대전으로 번질 가능성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이승만정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양측이 휴전 논의를 시작하는 배경이 됐다. 1951년 7월10일 개성에서 협상이 시작됐으나 양측이 군사분계선 획정이나 포로교환방식 등에 대해 워낙 큰 시각차를 보여 최종 체결까지는 2년여가 걸렸다.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긴 휴전회담이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직후 38선 경계 표지판을 두고 포즈를 취한 미군들.
세계일보 자료사진
◆불안한 평화와 한·미 동맹

정전협정으로 포성은 멎었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이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었다. 정전협정은 한반도 평화를 영구 보장해주는 문서가 아니라 전쟁 당사국 사령관끼리 단지 ‘발포중지(cease fire)’를 합의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일단 1953년 정전협정 이후 한반도는 정전체제에 의해 유지되고, 정전협정에 의해 설치된 군사정전위원회는 이의 이행 여부를 감시하게 됐다. 국제법상 정전은 전쟁이 끝난 상황이 아니라 일시중단된 상태를 의미한다. 양측은 이런 불안정한 체제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바꾸겠다는 취지에서 1954년 4월26일 제네바에서 정치회담을 열었지만 아무런 성과없이 87일 만에 막을 내렸다.

남한의 이승만정부는 휴전회담 초기부터 ‘북진통일’과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주장하며 정전협정 체결에 반대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협정 체결로 분위기가 굳어가자 회담 막바지에 전후 한국의 안전보장을 위한 정치적 거래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반공포로 2만5000명을 전격 석방했다. 이 대통령의 ‘벼랑끝 전술’에 놀란 미국은 정전협정을 체결하는 대신 한국과 상호방위조약에 합의했다. 정전협정이라는 불안한 체제를 한·미동맹으로 보완해 한반도의 안정을 지키는 시스템이 이때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北 도발에 누더기된 협정

북한은 지난 60년간 끊임없는 도발로 정전협정을 누더기로 만들었다. 북한은 남북 양측 간 완충지대로 설정된 비무장지대에 군사시설물을 설치한 데 이어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와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땅굴 발견,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도발 등의 무력도발로 정전협정상의 적대행위금지 조항을 사문화시켰다.

2012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정전협정 체결 후 북한이 정전협정을 위반한 사례는 43만건에 달한다. 특히 간첩남파 같은 침투행위는 1959건, 천안함·연평도 사태 같은 국지도발이 994건이나 됐다.

그러나 이런 정전협정 위반을 감시해야 할 중립국감독위원회는 간첩행위 논란 끝에 1956년 기능을 상실했다. 군사정전위원회마저도 91년 3월 한국군 장성이 유엔사측 수석대표로 임명된 이후 한 번도 열리지 않은 데다 1994년 4월 북한이 아예 철수하는 바람에 유명무실한 존재가 됐다.

북한은 대외적으로는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있지만 정전협정하에서 상호 정치적 군사적 신뢰를 쌓아 평화협정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길을 택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무력통일을 해볼까에만 골몰해왔다.

정전협정 체결 60년을 맞아 이런 불안정한 정전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안착시킬 수 있을지가 여전히 남북 모두에게 시대적 과제로 남아 있다.

김동진 기자 bluewins@segye.com